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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월 29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도구 Ludovicus 2008. 3. 29. 09:42
      

 

 

 3월 29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독서 사도행전 4, 13 - 21

세상에,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크고 작게, 알게 모르게

우리 주위에는 이런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나곤 하지요.

오늘 우리는

‘정말 이럴 수가 있었을까?’ 싶은 또하나의 일들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의 증언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도행전에 적힌대로 그들은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삶은 곤궁한 이들이었죠.

무리 속에 묻혀있으면 존재감도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없는 것 투성이, 부족한 것 투성이인 사도들이었지만

분명... 우리에겐 없는 무언가가,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3년이라는 세월을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사랑하는 것,

아픈 이들을 감싸고 낫게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가치가 가장 우선한다는 것에 대해

철학과 삶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명 연설가로 거듭나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삶 속에서 3년이란 시간동안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힌 것을

사람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사도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기적 중의 기적, 기적의 정점인 부활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은 은총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체험을 알리는 일에 적극적이었고

우리는 소극적입니다.

우리의 기쁜 소식, 크나큰 보화를 드러내는 일에 너무나 소심합니다.

과장해서 말할 것도 없는 것을 꾸며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사도들을 닮아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복음 마르코 16, 9 - 15

살다보면 내 앞에 가로놓인 현실의 암울함이 너무 엄청나

어떤 사건의 본질에 도달하는 일 자체가

참으로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슬픔이, 괴로움이

우리가 응당 누릴 수 있는 자잘한 기쁨과 행복까지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체험한 예수님 이야기도 믿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커다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생 자신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리고 스승님과 자신들을 핍박했던 이들 앞에

짜잔, 하고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쉽게 돌아가셨고

더군다나 그 모습은 가장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커다란 사건 이후에

과연 어떤 말이 귀에 들어왔을까요?

그들은 주님의 죽음이라는,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 상처를 입었던 터라

주님에 대한 증언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흥겨운 노랫말과 멜로디의 노래라 하더라도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귀에는 장조의 노래도 단조로 들립니다.

슬픔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해주지만,

슬픔에 잠긴 그들의 귀에 예수님의 부활 소식도

기쁘게 들리지 않습니다.


인생살이에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슬픔 속에 빠져 있으면 부활을 노래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돌덩이를 치우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새로 오시는 예수님!

어제까지 알던 주님은 이제 안 계십니다.

오늘 주님은 새롭게 나를 찾아 오시지요.

그리고..내일 주님께선 또 다른 모습으로 제게 오시겠지요?


주님께서는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새로우신 분이시기에

어쩌면 주님께서 저를 찾아주실 때마다

저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었나이다.


그 때는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께서 떠나실 때에야 주님을 알아보고,

울며 매달리며 후회하고 통곡하며 땅을 치나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저희는

매일 겉옷을 벗고 매일 새로운 물 속에 뛰어들어야하며

매일매일 시야를 키워 세상을 바라보나이다.


늘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나며

저희는 매일매일 자라나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양식을 통해 살을 찌우고

키를 키우며 삶을 이어가나이다.


매일매일 저희를 살려주시는 주님 덕분에

저희는 기꺼이 오늘, 이 순간 죽을 수 있나이다.

아멘.

 

출처 : 사랑의 향기마을
글쓴이 : 빵의 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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