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속삭이듯 얘기하며 살자꾸나!!
그럭저럭 성당에 다닌 지 50여 년이 흘렀습니다.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동생들 손을 잡고 아주 어색하게 공소에 가서 무릎을 꿇고 공소예절을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 고상(苦像)을 바라보며 눈물도 흘리고, 기도도 하고, 더듬거리지 않고 공과 책을 잘 읽는다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소리도 듣고, 큰 미사에 참례하러 읍내 성당에 가거나 공소에서 판공성사가 있어서 신부님이 오시면 복사 선생님(지금의 사무장님)이 신부님 장백의, 개두포, 제의와 영대와 허리끈을 잘 챙기는 것을 보기도 하고, 마냥 신기한 것뿐이어서 그렇게 좋아서 쫓아다닌 것이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 본당에 가끔 일을 봐주러 우시는 큰 본당 수녀님을 아주 좋아해서 수녀님을 만나려고 전화도 없던 시대, 70여리를 걸어서 무작정 가기도 하고, 교리문답 320조목을 모두 외웠다고 신부님이 무지하게 비싼 책을 상으로 주셔서 열 번도 더 읽고 지금까지도 자랑하면서 다니는 것이 내 신앙생활의 시작이었고, 모습이었습니다. 벌써 부활절을 참으로 많이 지냈고, 먹은 달걀을 모아도 여러 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얘기지만 나는 아직도 주님을 뵙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자주 주님을 만나고 산다고 합니다. 정말 부러워서 못살 지경입니다. 한 번은 어느 목사님이 매일 주님과 얘기를 하면, 주님께서 일일이 그날의 일을 지시하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주님하고 얘기하려고 여러 번 시도해 보았지만 주님의 얼굴도 본 적이 없고, 도란도란 얘기 해 본적도 없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하고, 이렇게 투자하면 이익이 볼 것이고, 이렇게 하면 병이 나을 것이고, 이쪽으로 가면 아주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꿈에서도 복권을 사라고 해서 샀더니 당첨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하면, 은근히 속이 상하고 부아가 치미는 것입니다. 나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유신정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때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시는데 기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추기경님, 하느님 보셨습니까?” “아니오.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래서 나도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습니다. 그러시더니 추기경님은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만나고 삽니다.” 그때는 추기경님이 젊게 보였으니 노망은 든 것은 아닐 것이고,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연탄을 배달하는 한 자매가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언덕길을 오릅니다. 산동네에 연탄 한 장을 배달하면 2원을 받습니다. 200장을 싣고 언덕길을 오를라치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쉬려고 하면 뒤로 미끄러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밀어주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연탄이 묻을까봐 전부 피해갑니다. 좁은 길에 자동차는 빵빵거리며 난리를 피웁니다. 그런데 리어카가 갑자기 가벼워졌습니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은 중학생 하나가 가방을 목발에 걸치고, 나머지 손으로 리어카를 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언덕에 다 올라 가방을 다시 지고 흐르는 땀을 손으로 쓱 씻었는데 땀하고 연탄이 묻어서 까만 땀방울이 볼을 타고 내립니다. 그 연탄이 묻어 까만 땀방울 속에 주님께서 웃고 계셨습니다.” 추기경님은 그 내용을 잊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가 주님을 뵈웠습니다.”라고 마리아는 말합니다. 주님을 뵙기 위해서 피정에도 많이 참석하였고, 기도도 숱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 하소연도 많이 하였습니다. 가슴을 두드리며 애걸복걸하기도 하였지만 한 번도 자상하게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심 많이 서운했고,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하고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 주님을 마리아처럼 사랑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향유 병을 깨트려 주님의 발을 씻어드릴 만큼 주님을 사랑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그 사랑 속에 주님께서 웃고 계시다고 했는데 나는 이웃이나 내 가족에게 정말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내 욕심이 지나쳐 억지를 부리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였습니다. 억지를 부려도 주님께서는 아마 이렇게 나를 달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야고보야 내가 언제나 네 곁에 있고, 네가 내 곁에 있으며, 네가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는데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심통을 부리느냐? 넌 참 욕심도 많다. 억지도 많다. 매일 속삭이듯 얘기하며 살자꾸나.”
~이 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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