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가톨릭 교리 방

[스크랩] 하느님을 안다는 것 - 우리의 삶

도구 Ludovicus 2008. 3. 23. 07:49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믿음

【신앙의 핵심】

  ♣ 하느님을 안다는 것 - 우리의 삶 ♣
    “아버지,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한분의 참된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또한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입니다.” (요한 17,3)이 말은, 그 원본이 1993년에 출판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표어이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이다. 이 앎이 우리 삶의 목표이다. 『성서』는 이것을 ‘하느님을 본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어릴 때, ‘나는 하느님을 보고 싶다!’ 고 했다. 그 후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말을 여기에 첨가 했다고 한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을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 (출애 33,20)고 말한다. 하느님을 본다는 것, 하느님을 안다는 것, 그것이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이 아니다. 여기 이 세상의 삶에서는 사도 요한의 말이 옳다. 즉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요한 1,18). 따라서 이 지상의 삶은 아직 온전한 그리고 참된 삶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와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바람과도 같이 사라진다. 우리는 하나의 다른 삶,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복한 삶에 로 초대되어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즉 그의 자서전, 신앙고백,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찬미가인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모든 것을 바쳐 주님께 매달릴 때, 더 이상 고통과 슬픔이 나를 짓누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으로 가득 채워진 내 삶은 비로소 참된 삶이 될 것입니다.’ (『고백록』10권 28장).‘이러한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창조되었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하는 ’불안한 마음‘은, 바로 이러한 행복을 찾고 있는 마음이다. 옛 교리서에 나타나 있는 첫 번째 결론은, ‘무엇 때문에 하느님 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는가?’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섬기다가 하늘나라에 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다.’ 이 짧은 문장은 마치 가파른 산을 등반하는데 있어서 든든한 자일 (밧줄)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해 질 때, 우리가 그것을 꽉 붙들고 놓지 않을 수 있는 그러한 것이다.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성당에 다니지 않던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에 별 생각 없이 암기했던 교리서의 이 문장이, 삶의 위기에 봉착 해서 갑자기 큰 도움이 되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나 자신 개인적으로도 여러 번 경험했었다. 교리서의 가장 중요한 이러한 진리를 밝히고 난 후에, 이제 교리서 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해 볼 수 있겠다. 즉 교리서란 하나의 길이다. 그것은 행복한 삶에로 이끄는 하나의 여행 안내서이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그리스도교적 삶이란 ‘길’이었다 (사도 9,2:19,9.23;24,14.22). 그것은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이끌 어 줄 뿐 아니라, 확실히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 주는 그러한 길이었다. 바로 이러한 길에 대해서, 그 길의 아름다움과 기쁨 그리고 위험 에 대해서 앞으로 이야기해 나가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여기서 그 길잡이가 될 것이다.

     



    출처 :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글쓴이 : 보라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