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믿음
【신앙의 핵심】
♣ 하느님을 안다는 것 - 우리의 삶 ♣
“아버지,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한분의 참된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또한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입니다.”
(요한 17,3)이 말은, 그 원본이 1993년에 출판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표어이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이다. 이 앎이 우리 삶의
목표이다.
『성서』는 이것을 ‘하느님을 본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어릴 때, ‘나는 하느님을 보고 싶다!’
고 했다.
그 후 ‘하느님을 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말을 여기에
첨가 했다고 한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을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
(출애 33,20)고 말한다.
하느님을 본다는 것, 하느님을 안다는 것, 그것이 삶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이 아니다. 여기 이 세상의 삶에서는
사도 요한의 말이 옳다.
즉 일찍이 아무도 하느님을 보지 못했다(요한 1,18).
따라서 이 지상의 삶은 아직 온전한 그리고 참된 삶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그림자와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바람과도 같이 사라진다.
우리는 하나의 다른 삶,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복한 삶에
로 초대되어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즉 그의 자서전, 신앙고백,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찬미가인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모든 것을 바쳐 주님께 매달릴 때, 더 이상 고통과 슬픔이
나를 짓누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으로 가득 채워진 내 삶은 비로소 참된 삶이 될
것입니다.’
(『고백록』10권 28장).‘이러한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창조되었다.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하는 ’불안한 마음‘은, 바로 이러한
행복을 찾고 있는 마음이다.
옛 교리서에 나타나 있는 첫 번째 결론은, ‘무엇 때문에 하느님
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는가?’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섬기다가 하늘나라에 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다.’
이 짧은 문장은 마치 가파른 산을 등반하는데 있어서 든든한 자일
(밧줄)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해 질 때, 우리가 그것을 꽉 붙들고 놓지
않을 수 있는 그러한 것이다.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성당에 다니지 않던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에 별 생각 없이 암기했던 교리서의 이 문장이, 삶의 위기에 봉착
해서 갑자기 큰 도움이 되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나 자신
개인적으로도 여러 번 경험했었다.
교리서의 가장 중요한 이러한 진리를 밝히고 난 후에, 이제 교리서
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해 볼 수 있겠다.
즉 교리서란 하나의 길이다.
그것은 행복한 삶에로 이끄는 하나의 여행 안내서이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그리스도교적 삶이란 ‘길’이었다
(사도 9,2:19,9.23;24,14.22). 그것은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이끌
어 줄 뿐 아니라, 확실히 그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 주는 그러한
길이었다.
바로 이러한 길에 대해서, 그 길의 아름다움과 기쁨 그리고 위험
에 대해서 앞으로 이야기해 나가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여기서 그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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