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3월 20일 성주간 목요일(주님 만찬 성 목요일)

도구 Ludovicus 2008. 3. 20. 08:58
 

 

 

                   

             2008년 3월 20일 성주간 목요일(주님 만찬 성 목요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


   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 가는 일도 있고, 참으로 돈독하고 좋은 일입니다. 가족들의 관계는 정말 혈연이라서 나눌 수 없는 관계입니다. 비록 부부 싸움을 하고, 서로 삐쳐서 상대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천륜과 같은 깊은 사랑은 절대로 인위적으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친인척으로 맺어진  부모자식 간이나 형제들은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사이로 살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우정을 나누고, 형제와 자매처럼 지낼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연인과 부부의 연을 맺고, 또 어떤 경우는 사제지간이 되기도 하고, 직장의 상사와 직원이 되기도 하고, 군인에서 상관과 부하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누군가 관계를 맺고 살다보면 많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사람들이 맺고 싶은 관계도 있고, 사람들과 소원한 관계도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성의 인간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봅니다. 관계(relation)는 넓은 뜻으로는 둘 이상의 사고의 대상을 어떤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경우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 이상의 사람들이나 사고나 이슈 등을 같은 시각으로 파악하고 그들의 관계가 어떤지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대상들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간상에 병존하는 대상, 유사점이 있는 대상, 상호 모순되는 대상은 각각 공존·유사·모순이라는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각각 공존관계·유사관계·모순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관계에는 개념이나 판단 상호간의 논리적 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와 같은 사실상의 관계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실체와 우유성(偶有性), 원인과 결과, 교호작용(交互作用)을 관계의 카테고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의 기교이며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분명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공존관계이든, 유사관계이든, 모순의 관계이든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그 연결고리 때문에 인간은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고, 소속감도 느낄 뿐만 아니라 괴롭고 아프고, 소외감도 느끼고, 분노와 배신감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요즘 이 관계에 대하여 아주 심각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이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관계는 참으로 상대적인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하여도 상대방과의 관계에는 아주 미묘한 것이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와 같은 경우는 상당히 대인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실패하고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잘해 줄 수는 없고, 잘 대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점이라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는 예수님은 황송해서 사양하고, 또 말씀을 듣고 온 몸까지 씻어달라고 과욕을 부리는 베드로 사이의 그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과 공존, 유사성을 나눌 수 없고, 아무런 몫도 공유할 수 없는 관계는 맺고 싶지 않은 것은 베드로와 내가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그 반대로 치닫고 있는 나의 인간관계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반성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진실로 뜨거운 사람이었던가?

 

                        

                                ~이 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원컨대 지극히 강력하신 저 십자가의 능력이 저에게 힘을 응결시켜 주시어,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게

하시기를 빕니다.      (최양업 신부의 세 번째 편지 중에서)

 

 

   
출처 : 사랑이 머무는 자리
글쓴이 : 요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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