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3월 19일 성주간 수요일

도구 Ludovicus 2008. 3. 19. 06:24
 

 

 

                   

                           2008년 3월 19일 성주간 수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돈을 잘 벌어야 대접을 받는 세상


   사람의 재주는 각각 타고난다고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있고, 글을 잘쓰는 사람도 있고, 기계나 설계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조각을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참으로 부럽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아주 작은 아이디어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적당한 기회를 절대로 놓지는 일이 없고, 과감하고 모험적인 방법으로 투자하며, 기회비용을 잘 선택하기도 하고, 전략이나 기술이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은 기반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갑니다. 그리고 고객을 잘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고 순리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으로 고객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이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경영학에서는 그 것을 효율성이 좋고 높다고 말합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효율성을 높여 효과성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것이 고객을 감동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장수선무 다전선매(長袖善舞 多錢善買)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처음에 이 말을 배울 때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한다.>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밑천이 있어야 돈을 잘 버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이 말은 조건이 좋으면 그 조건을 잡고 있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국가를 좀먹는 다섯 종류의 좀’을 이야기 했는데 그 것을 오두(五蠹)라고 했습니다. 국가를 좀먹는 사람들은 그 본분에 충실하지 않고 그 맡은 바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한비자가 말한 오두(五蠹)는 ‘학자와 유세하는 선비, 협객과 상공업자, 국가의 공민으로서의 의무를 버리고 권세가의 식객 노릇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다섯 좀벌레 같은 존재’라고 했고, 이와 같은 국가의 기생충은 정치의 문란에서 발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란을 선동하는 존재이므로 임금이 된 사람은 그들의 언론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그들의 행동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강경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면서 그 당시에 권세가들에게 붙어서 아첨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좀 벌레와 같이 국가를 좀먹는 사람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비자는 진나라의 왕 정(政)에 의해서 감옥에 갇혀 옥중에서 독살 됩니다. 그를 독살토록 한 사람들은 진시황의 실부(實父) 여불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막대한 돈으로 진나라의 재산을 많이 축적해서 진나라를 막강하게 만든 사람이었지만 정말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매가 길고 큰 사람은 학식이 많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을 빗대놓고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은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여 그들이 시키는 일을 잘 흔들어 대는 사람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한비자는 자본이 많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상공업을 잘 일으키고, 돈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나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그 돈으로 권력에 아부하면, 결국 나라를 좀먹고, 망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한다면 모든 일을 도모하기 쉽고, 힘이 없고, 돈도 없다면 약하고 어지러워서 모든 일을 계획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악착 같이 돈을 벌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권력에 붙어서 자신의 배움과, 웅변과, 달변을 헛되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권력에 아부하면서 자신들의 돈을 벌려고 매달리는 사람들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본래의 의무를 잃어버리고 사는 학자도 유세하는 사람들도, 협객도 상공인도, 공무원도 다 나라를 좀먹는 좀 벌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는 좀 벌레 같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일을 나도 매일 잘 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아주 신심이 돈독한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나는 아니겠지요?’라고 입에 발린 말로 능청스럽게 주님을 팔아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상심하셨을까 생각하면, 정말 내가 밉습니다.

 

                        

                             ~이 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저의 빈곤과 허약을 의식하고 있는 저는 매우 두렵고 겁이납니다

하느님께 바라는 희망으로 굳세어져서 방황하지 않으렵니다.

 

                 (최양업 신부의 세 번째 편지 중에서)

 

 

출처 : 사랑이 머무는 자리
글쓴이 : 요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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