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3월 18일 성주간 화요일

도구 Ludovicus 2008. 3. 18. 07:09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3월 18일 성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복음 요한 13,21-33.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흉노족을 토벌한 한나라의 명장 이광은 활을 대단히 잘 쏘는 명궁이었는데, 그의 화살이 날아간 곳에는 어김없이 새나 산짐승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광이 하루는 사냥 길에 올랐다가 숲 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문득 앞을 보니 큰 호랑이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이광은 진정하고 급히 화살을 집어 들었지요. 만약 그가 쏜 화살이 빗나간다면 그는 호랑이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요.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활시위를 힘껏 당겼습니다.

다행히 화살은 호랑이를 명중시켰지만, 이상하게도 호랑이가 전혀 움직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을까요? 글쎄 그것은 호랑이 형상처럼 생긴 바위였던 것입니다. 그가 쏜 화살은 바위 한가운데 깊이 박혀 있었지요.

화살로 바위를 뚫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그는 다시 바위를 향해서 쏴 보았습니다. 그러나 화살이 박히기는커녕 화살촉이 튕겨 나가고 화살대는 부러져 버렸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일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합니다. “같은 화살로 같은 바위를 쏘았지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과녁을 향한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환경과 목표가 같을지라도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을 먹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천지차이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마음가짐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팔아넘길 사람을 미리 예고하심으로 인해서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신을 배반할 유다이지만 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받고도, 유다는 세속적인 욕망에 오래 전부터 찌들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 갈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워낙 뻔뻔한 인물이라서? 그래도 예수님께서 모르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역시 이 유다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죄의 유혹에 얼마나 많이 넘어가고 마는지요? 분명히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죄이며, 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주님께서도 내 삶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죄의 유혹에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 편한 일을, 지금의 세속적인 이익을 바라보면서 회개하지 않고 그 유혹의 길을 선택하고 맙니다. 즉, 우리 역시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유다의 마음을 간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앞서 이광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면서 어떤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지차이로 달라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내 마음가짐 역시 바꿔야 할 것입니다. 죄에 대해 안일한 마음가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를 멀리하겠다는 마음가짐만이 제2의 유다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세요.



성공을 위하여 (‘좋은 글’ 중에서)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이다
'다음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이다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이다

'무엇이 이뤄졌으면'이 아니라
'무엇을 노력하고 있는지'이다

'원하는 것이 왜 안 이뤄지는지'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위해 왜 행동하지 않는지'이다

'나는 왜 안 되는냐'가 아니라
'나는 왜 행동하지 않느냐'이다

'나는 무엇 무엇을 할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무엇 무엇을 하고 있다'이다

'내 소원은 이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된다'이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글쓴이 : 빠다킹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