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3월 15일 사순 제 5주간 토요일

도구 Ludovicus 2008. 3. 15. 18:55

 

 

                

                     2008년 3월 15일 사순 제 5주간 토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6.18-21.24ㄱ<또는 루카 2,41-51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교언영색(巧言令色)과 백아절현(伯牙絶絃)

  

  가끔 어떤 모임이나 성당에서 피정을 지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주 건방져서 그런 때 거절하지 않고 자주 나서서 혼자 신나서 떠듭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오래 전부터 버릇이 된 나의 모습입니다. 강의를 해서 먹고 사는 직업을 택한 것이 나에게는 큰 잘못입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강의를 많이 할수록 진실은 은근히 도망가기 때문입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 본색을 드러냅니다.

 

교언영색은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에서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라는 뜻을 가진 ‘교언영색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는 말>에서 온 말입니다.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생글생글 웃으며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치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 된 사람은 적다는 뜻입니다.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진심을 벗어난 방법으로 남의 비위나 맞추려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하는 것은 강단에 서면서 이미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봇물처럼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평신도가 교회에서 일을 할 때 제일 조심해야 하는 일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 많으면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그렇고, 교구에서도 그렇고, 운동 단체에서도 그렇습니다. 신부님들도 눈치 보는 것에는 완전히 고수가 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들이 ‘하느님의 눈치를 보면서 세상에 대하여는 정말 열린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면서도 매순간 눈치를 보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고 모습입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그 즉시 교구청으로 주교님에게 고자질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고자질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주교님의 입장일 것입니다. 그래서 강단에 서서 강의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청중들을 의식해서 사람들의 박수를 은근히 유도하기도 하고, 목사님들이나 방송에 출연하는 유명한 강사들처럼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진실이 많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점점 커집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이야기는 항상 지음(知音)을 아는 친구를 두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지만 진(晉)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달인 백아가 있었습니다. 백아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 종자기(種子期)가 있었고 종자기는 백아가 거문고로 높은 산들을 표현하면 “하늘 높이 우뚝 솟는 느낌은 마치 태산처럼 웅장 하구나!”라고 하고, 큰 강을 나타내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마치 황하 같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였습니다. 종자기는 백아의 음악세계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백아와는 거문고를 매개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음악 세계가 일치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어 버리고(백아절현 : 伯牙絶絃) 죽을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거문고 줄을 끊은 것이랍니다. 종자기는 백아 앞에서 교언영색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진실로 백아를 사랑하고, 그와 같은 음악의 세계에서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인정받고 인정해 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강의를 하고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소박한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솔한 강의를 통해서 종자기와 같은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 강의를 할 때 가지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교회에서 일할 때에도, 집안에서 살림을 할 때에도, 직장에서도, 정치가들도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구별이 없이 아주 많이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정해 주지 않으면 섭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감정이 상해서 신앙을 버리는 사람도 있고, 대판 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부간의 가장 큰 갈등도 바로 인정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셉 성인은 전혀 그렇지 않은 분으로 성경에서는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의인(義人)일까 생각해 보면 내 삶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반성이 됩니다. 그분의 그 의로움과 조용히 순종하시는 모습을 아무리 배우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분의 그 침묵을 아무리 흉내 내려고 해도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충청도 사투리로 ‘어림 쪽다리도 없는’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합니다. 성인의 대축일인 오늘 나는 노동자와 임종자의 주보이신 성 요셉께 인정받지 못하여도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죽을 때에 잘 죽을 수 있도록 전구(轉求)해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이 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너는 정말 진실을 말하는구나, 대철아, 너에게 한마디 청한다.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해다오. 만일 나를 잠깐 도와주면

나는 구원받을 수 있겠다.” -   유대철 베드로

(김대건 신부의 조선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출처 : 사랑이 머무는 자리
글쓴이 : 요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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