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3월 4일 사순 제 4주간 화요일

도구 Ludovicus 2008. 3. 3. 22:45

 

 

                       

                        2008년 3월 4일 사순 제 4주간 화요일

 

                        <일어나 네 들 것을 들고 걸어가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5,1-3ㄱ.5-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벳자타’ 연못가에서 물속에 넣어줄 사람을 기다리듯...

 

  어려서 어른들의 말씀은 정말 엄청난 잔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그 중에서 많이 들었던 말은 ‘인내’(忍耐)였습니다. 특히 성질이 급하고 좋지 않은 나에게는 언제나 ‘참고 견디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충고해 주셨기 때문에 많이 참고 견디며 사느라고 정말 고생 많이 하였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행동의 결과를 중요시하지 않고, 그 결과를 가져온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 그것을 가치판단의 중심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수련의 첫 단계는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도 수도원이나 피정이나 고행에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을 찬미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한 사람을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방영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교통사고로 장애자가 된 남편이 또한 교통사고로 두 손을 절단한 아내를 제보해서 ‘십자수 부부’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것을 보았습니다. 팔뚝으로 십자수를 놓고 있는 아내는 정말 인고(忍苦)의 고통을 견디며 온몸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그 작품은 그녀의 모든 노력을 쏟아 놓은 천상의 작품이었습니다. 팔뚝으로 놓는 십자수 바늘 한 땀은 정상인보다 열두 배나 느리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작품을 열세 개나 이루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부를 찬미하고 그 남편의 말대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저작침(磨杵作針)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쇠 절구 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10년 작정하고 산으로 들어갔다가 도중에 자만하여 채우지 못하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 어귀에서 어떤 노파가 쇠 절구 공이를 숫돌에 가는 것을 보고 신기하여 물으니 노파가 바늘을 만들려고 간다며 10년을 갈면 될 거라고 자신 있는 대답을 하더랍니다. 이백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다시 산으로 올라가 10년을 다 공부하고 내려와 마침내 5천년 역사를 통하여 중국의 독보적 대시인(詩仙)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나 요즘에 그런 얘기를 하면,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꾸준하게 노력하고,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업을 하거나 기계를 움직여 쉽게 바늘을 만들 수 있는 것을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오히려 나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거목단, 수적석천’(繩鋸木斷,水滴石穿)이라는 말이 채근담에 있지 않습니까? <노끈도 톱 삼아 쉬지 않고 썰면 나무가 끊어지고,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이 뚫어진다.>라는 말입니다. 정말 은근과 끈기와 무한한 노력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그 인고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근간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이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최근에는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많이많이’를 강조해서 모든 사람들의 성격이 급해지고 욕심이 많아지고, 세상의 모든 일을 당장 이루어내고자 하는 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 성격이 식당에서 드러난다고 합니다. 횡령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과격한 말을 함부로 하거나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 기다릴 줄을 모르고, 꾸준한 노력을 등한히 하는 성격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벼락공부로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고, 벼락공부로 시험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최선을 다한다는 그 인고의 정신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38년이나 한번만 들어가서 목욕해도 병이 낫는다는 예루살렘 양문(羊門) 옆에 있는 ‘벳자타’라는 연못가에서 물속에 넣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예수님을 38년이나 기다린 셈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 연못가에서 누군가 자신을 못에 넣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그 인고(忍苦)의 세월을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오늘 들것을 들고 스스로 벳자타 연못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기에 그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며 허망한 욕심에 기도도, 선행도,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세월을 좀먹고 있습니다. 이제 노력은 모두 없애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 이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신자들을 만날 때 가장 좋은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대하였고 좋은 아버지처럼

가르쳤습니다. 특히 비참함을 견디어내면서도 그것을 오히려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

           (김대건 신부의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출처 : 사랑이 머무는 자리
글쓴이 : 요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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