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3월 3일 사순 제 4주간 월요일

도구 Ludovicus 2008. 3. 2. 18:34
 

 

 

                         

                           3월 3일 사순 제 4주간 월요일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4,43-54


그때에 43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내가 열여섯 살 때 우리 집 형편에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언감생심(焉敢生心) 상상도 못할 형편이었습니다. 나이 20이 되면서 공무원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야 하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아침밥을 자주 거르면서 출근하기도 하고, 무엇에 혼이 나간 사람처럼 점심시간에는 문화원에서 구두를 닦는 아이들에게 검정고시를 위한 준비를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간에 아이들도 밥을 먹지 못하고 오는 귀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온몸으로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그 때에 내게 과외는 정말 요긴한 생활 수단이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새벽반 아이들 공부를 시켜 학교에 보냅니다. 그리고 열심히 직장에 출근하고 다시 저녁이 되면 학교에서 끝난 아이들에게 저녁과외를 시켜줍니다. 한 학생이 내는 수업료가 월 500원 정도 했으니 열 명만 해도 한 달 봉급만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는 의자와 책상을 만들어서 하루에 적어도 과외 시간이 6시간은 되고, 직장에서 10시간을 일하면 전체적으로 매일 적어도 16시간은 일해야 했습니다. 스물두 살 때 나는 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핵에 걸려 쓰러졌습니다. 치료약도 변변치 못할 때 먹는 것도 시원찮아서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앓아야 했습니다.

 

심한 각혈로 기침을 할 때마다 동생들은 얼굴이 백지장이 되었었습니다. 빨간 피를 토하는 오빠를 보고, 형을 보는 동생들의 시선은 죽음을 앞당겨 놓은 사람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모든 가족들이 의지하고 있는 큰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시고 이십이 넘은 자식의 소 대변을 받아내며 매일 피 걸레를 수도 간에서 빨래하시며 눈물지으시며 우셨습니다. “주님, 이 십자가의 고통을 저에게 주시고 제발 아들만은 살려 주십시오.”하시던 어머니의 기도는 차라리 기도라기보다는 통곡을 수반한 억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나는 3개월 만에 밤톨 만하게 딱딱하게 굳은 피 덩어리를 토해 내놓고 살아났습니다. 기도(氣道)를 막고 있던 피가 뭉친 것을 토해 내던 날 의사 선생님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죽기 직전에 하얀 옷을 입은 성모님이 당신의 손가락을 내 목구멍에 넣어 내 가슴에서 핏 덩어리를 뽑아내시는 환영을 보았고 지금도 그 생각에 행복해 합니다. 그래서 살아났지만 내 폐의 1/3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져서 지금도 폐활량이 아주 적어서 노래를 못한답니다. 숨이 다른 사람들의 두 배는 답답하고 빨리 쉬어야 한답니다.

 

   죽어가는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마음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히 상상 할 수 없는 아픔을 그냥 잊으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나를 부축해서 걸음마를 배워주시면서 한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무 살이 넘은 자식이 걸음마를 배운다고 매 걸음마다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는 어머니에게 자식이 살아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체면이고 염치고 예의까지도 팽개치고 그 일을 하시던 어머니에게 하느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매일매일 내가 전혀 모르게 일어났던 기적들을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그 기적을 체험한 다음에 신앙은 조금씩 유치함에서 진솔한 방향으로 옮겨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에 의존해서 하느님 사랑을 느끼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모든 장기를 내어 놓은 아버지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음을 택한 수많은 분들이 세계 도처에 숨어져 있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생각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부모들입니다. 당신의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서 천한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자식들을 사랑하고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무릎이라도 꿇고 비굴할 만큼 매달리는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살려 주십니다. 기적이나 징표가 아니라 아버지의 본성을 아름답게 여기십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자식이 내가 죽음으로써 살아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식들이나 형제들이나 냉담한 신자들이 하느님을 떠난 상태에서 회개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육신의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영혼의 죽음을 없앨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고통은 내가 짊어지고 가고 싶습니다. 고해 성사를 보아도 해결되지 않는 그 문제로 매일매일 가슴이 찢어지듯 괴롭습니다. 주님, 저희 자식들을 살려 주소서.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 이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백성들을 말과 모범으로 가르쳤고 전성을 기울여 성사로 양육하였으며 미숙한 신자들을

더욱 자주 가르쳤으며 의문 나는 것을 자상하게 설명 하였습니다.

   보방 신부 (김대건 신부의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중에서)    


 

 

출처 : 사랑이 머무는 자리
글쓴이 : 요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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