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마귀들이 대토론회를 가졌습니다.
먼저 재물 마귀가 제안했습니다. “하느님보다 돈이 재미있고
위력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나 많은 마귀들이 “그 방법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현명해져서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라고 하면서 반대했습니다.
무신론 마귀가 의견을 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하느님이 있기는 어디 있느냐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을
멍청이라고 을러대면 됩니다.” 그러나 역시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지 모르나,
훌륭한 사람들은 속지 않는다.”며
반대했습니다.
이때 한 마귀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성공한 경우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고 괴로워할 때 ‘
그래 맞아. 그러나 너만 그러는 게 아니데 뭐. 그리고 이번만
그렇게 하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잖아’하고 뒤로 미루게 할 때
제일 많이 속아 넘어갔답니다.
또 하느님을 없다고 하지 않고, ‘기왕 세상에 왔으니
우선 돈도 벌어보고, 재미도 느껴보고 하면서 하느님은
차차로 믿으면 될 것이 아니냐?
우선 세상살이부터 정리해 놓고 하느님한테는
차차 가도 되지 않겠느냐?’하고 했더니 사람들이 제일 많이
따르더군요.”라고 하자 마귀들이 만장일치로 그 의견이 가장
훌륭하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 의견을 낸 마귀의 이름을
물어보니, “제 이름은 차차 마귀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유혹을 만납니다.
그리고 세상의 다양한 유혹들과 자신의 꾀에 넘어가는
유혹들로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주저앉았습니까?
이러한 유혹과의 만남과 그 싸움 안에서 우리의 삶은
이곳저곳 상처입고 여기저기 해지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혹과의 만남이 단순이 삶의 힘겨움만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유혹에 넘어가 주저앉았을 때는 내 자신의 부족함에
실망하면서도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희망을 배울 수 있고,
유혹을 극복할 때는 내 자신에게 대견함을 느끼며
더욱 성숙한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있기에,
유혹은 우리 삶의 작지 않은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세상의 다양한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 안에서 주어지는 고통과 수난을 확신에
찬 굳건한 믿음으로 극복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간직한
믿음은 세상살이 안에서 만나게 되는 온갖 마귀들의
유혹과 끊임없이 싸워 이길 수 있는 회개와 반성입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이 수난과 고통, 죽음을 통해 우리 자신의
믿음을 더욱 키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차차 마귀의
꼬득임에 빠져 하느님을 뒷전에 두고 그럭저럭 살아온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사건들 안에서 진실한 회개와 참회의
실천으로 하느님께 뛰쳐나갈 수 있을 때 그분의 부활에
온전히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신자분들이 이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참된 회개와 참회의 실천을 통해 아름답고 거룩한
하느님 백성다운 삶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시길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