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활철학
-박상대신부-
지난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되어 오늘 그 첫 주일을 맞이하였다. 파스카의 신비를 향한 사순 첫 주일에 들려주는 복음은 인류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공생활 준비로서의 40일간 광야생활을 언급하면서 그 마지막에 악마의 유혹과 투쟁이 있었음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하느님 아버지의 인류구원계획은 이미 창조이전부터 준비된 것으로써, 때가 차자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셨으나(갈라 4,4참조), 인간 예수님의 본격적인 공생활 준비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마태 3,13-17),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마태 4,12 이하), 즉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40일간 주야(晝夜)에 걸쳐 기도와 단식으로 ‘대피정’을 하셨다는 짤막한 언급(마태 4,1-2)과 그 마지막에 세 차례나 악마의 유혹을 받으신 내용(마태 4,3-10)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 마르코는 아주 간단하게(1,12-13), 마태오(4,1-11)와 루카(4,1-13)는 거의 같은 내용으로 장황하게 기록하였다.
오늘 복음의 내용이 공관복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예수님의 세례와 갈릴래아 전도시작 사이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이 대목이 예수님의 세례와 공생활의 시작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의 유혹사건이 예수님의 세례사건뿐 아니라 공생활의 시작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공관복음이 보도하는 예수님의 세례사건에서 확실한 것은 세례를 받은 예수님께서 비둘기 모양의 성령과 함께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을 통하여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시편 2,7 참조)로 계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유혹하는 악마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3절; 6절) 따라서 오는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악마의 유혹을 받았고, 또 이를 물리쳤으며, 하느님의 아들로서 공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가 ‘하느님의 일’로 승격(昇格)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광야에서 보낸 40일간의 시간은 공생활을 위한 예수님의 ‘대피정’으로 간주되며, 대피정 중에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받으신 세 가지 유혹에서 ‘공생활을 위한 예수님의 다짐과 각오’, 즉 ‘예수님의 공생활철학’을 추론(推論)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추론되는 예수님의 공생활철학(公生活哲學)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 철학은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를 관통하고 담아내는 정신(精神)이요, 가치관(價値觀)이며 사고(思考)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마의 유혹과 이 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대처(對處)를 통하여 예수님의 공생활철학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세례 때 예수님 위에 내린 비둘기 모양의 바로 그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갔다는 점과 유혹의 장소가 광야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한편으로는 야훼 하느님의 끊임없는 보살핌과 다른 한편으로는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백성의 수많은 원망과 불만, 투정과 시험(탈출 14,11; 15,24; 16,2; 17,2; 민수 11,1.4; 20,3)으로 아로새겨진 40년의 광야생활을 상기시킨다. 즉, 예수님의 광야생활 40일과 악마의 유혹사건 속에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생활의 역사가 유비적으로 담겨있다는 말이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도 없이 하느님을 원망하고 시험하며, 투정을 부리고 불만을 표했지만, 오늘 유혹을 당하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어떤 종류의 투정도 불만도 원망도 시험도 하지 않으시며, 또 이를 통하여 어떠한 기적을 구하지도(1코린 1,22) 않으신다. 이는 순전히 공생활을 위한 자신의 몫이었고, 이것이 예수님께서 취하신 공생활의 철저한 기본노선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공생활철학은 악마의 유혹과 이에 대한 대처로 정립된다. 악마의 유혹과 예수님의 대처를 각각 정리해보자. ①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돌을 빵이 되게 하라. ->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신명 8,3)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②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성전 꼭대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보라. 천사들이 너를 지켜 주리라.(시편 91,11-12) ->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신명 6,16) ③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주겠다. ->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4-5.13-15)
예수님께서 악마의 모든 유혹을 성경의 말씀으로 대처하신 점이 특이하다. 성경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요 그분의 뜻이기도 하다.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의 정체와 예수님의 대처가 담고 있는 정신은 무엇인가? 딱 부러지게 언급된 것은 아니나 그것은 ① 빵을 만들어라: 물질의 유혹 -> 청빈, 하느님의 말씀, 진리의 정신, ② 밑으로 몸을 던져라: 기적과 시험, 권력과 특권의 유혹 -> 믿음과 봉사의 정신, ③ 엎드려 경배하라: 아부, 출세, 영달, 영광과 명예의 유혹 -> 유일신 하느님, 사람은 평등, 사랑과 인간 존엄성의 정신으로 정립될 수 있다. 예수님의 공생활철학은 이렇게 진리, 봉사, 사랑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물질의 풍요함을 누리고, 되도록 많은 힘과 능력과 권력을 쌓으며, 입신출세하여 명예와 영광을 누리고, 이를 과시하며 살아가는 것은 분명 인생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로 통하는 힌두교(Hinduism)가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필히 가져야 하는 것으로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손꼽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힌두교의 속 깊은 가르침은 다르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는 이를 가지려는 사람이 타인의 것을 취하거나 빼앗아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기름으로 불을 꺼야 하는 원리’로 되풀이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재물과 권력과 명예는 결코 영원할 수 없고 한시적이다. 잠시 사람을 기쁘고 행복하게 할 수는 있으나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는 이곳에 사람의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활철학은 철저한 진리와 봉사와 사랑에 있다. 이 철학은 예수님의 공생활 전체와 그분의 인류구원사명을 견인(牽引)하는 정신으로 드러날 것이다. 앞으로도 악마의 유혹은 다양한 각도에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될 것이지만,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인류의 구원을 가져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향한 그분의 인생여정은 바로 이들 정신으로 아로새겨질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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