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신앙인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함께 공부하던 사람 중에 전희원이란 분이 있었다.
개신교 전도사인 그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던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이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라틴어 수업은 상당히 두꺼운 두 권의 교과서와 두 권의 '라틴 이야기'를
한 학기에 끝내야 하는 과정으로 소문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다.
문법은 교과서를 통해 거의 혼자 터득해야 했고, 교수가 학생을 지명하면 그 학생들이
교과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업방식으로, 그날 공부할 내용을 이해할 수도 진도를 따라갈
수도 없었다.
어느날 수업이 끝난 후 전희원씨가 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아마도 그는 교수가 시각장애인인 자신을 배려하여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질문을 적게 한다고
생각했는지 "교수님, 저에게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질문해 주십시오"라고 부탁드리는
것이었다. 그는 라틴어 수업을 듣기 위해 날마다 새벽 3시까지 수업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점자로 된 교과서는 단 한 권뿐이었고 나머지는 교과서 내용을 직접 점자로 옮긴 후에
그것으로 공부를 해야 했으니, 수업을 제대로 듣기 위해 그는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런 그의 열정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난 진심으로 감동했다.
'라틴 이야기'는 주로 그리스 신화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미리 그 이야기책을 해석한 후 그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때 나는 전희원 전도사한테서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불굴의 의지와 흔들림 없는
신념을 보았다. 그는 앞못보는 장애를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장애를 딛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이끌기 위해 목회자의 길을 선택했다.
작은 일에도 비장애인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받는 것을 당당하게 거부하는 그를 보면서 삶에 애정을 지니고 열심히 사는 사람
특유의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을 보았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성숙된 내면의 깊이에서 우러나올 때 가장 자연스러운 향기가 나는 법
이다. 그런 향기라야 타인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우린 사는 동안 사람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는다.
오랜 기간 만나거나 지속적인 교류가 없더라도 '만남의 기억' 만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는 전희원 목사가 그런 사람이다.
몇 년째 소식 한번 주고받지 못했지만 가끔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태해지려는
나의 삶에 새로운 자극이 되어 재충전의 힘을 얻곤 한다.
그후 그는 목사 안수를 받고 지금은 코넬 대학교에서 한국 교회의 담임목사를 맡고 있으며
아직도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그가 무엇을 가졌는가보다는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 데서
새롭게 발견된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네」에서
류해욱 신부 지음 / 바오로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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