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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대성당 첫 삽 뜬 지 23년 만에 기둥 세운다

도구 Ludovicus 2007. 12. 18. 22:10
천진암 대성당 첫 삽 뜬 지 23년 만에 기둥 세운다
한국 천주교 발상지에 ‘천년 가는 성당’ 건립
1500억원 건립비, 일반 신도 성금으로 충당
땅 산 지 30년 되는 내년에 기둥 4개 올리기로
광주(경기도)=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벌써 반 이상 다 지었어.”

휑한 땅을 보고 변기영(67) 신부가 말했다. 35만평의 광활한 부지에 1m 높이의 화강암 몇 개와 사방에 가로·세로 10m짜리 철골 문만 위태롭게 서 있을 뿐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변 신부가 “여기 지옥불만큼 뜨거운 커피 가져와”라고 소리쳤다.

지난 11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 대성당’ 공사현장. 천진암은 1779년 남인 계열 유학자 정약용, 이벽, 이승훈 등이 모여 천주교 서적을 읽던 장소로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승훈은 178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영세를 받았다.

변 신부가 이곳에 100년에 걸쳐 세계 10대 성당에 들어가는 대성당을 짓겠다며 처음 땅을 사들인 때가 1978년, 내년이면 만으로 30년째다. 1985년 첫 삽을 뜬 뒤로도 22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성당은 위로 솟기는커녕 아래로만 내려가고 있다.

“터 닦기 위해 50m나 땅을 파서 평평하게 만들었어요.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지반이 탄탄해지는 거예요. 그 위에다 성당을 세워야 천 년을 가는 대성당을 지을 수 있어요.” 그렇게 땅을 내버려둔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 14년 만에 완공될 천주교 천진암 박물관… 내년에 완공될 한국천주교 천진암 박물관 앞에서 변기영 신부(왼쪽)와 공사책임자인 차삼웅씨가 얘기를 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14년 만에‘급하게’완공되는 건물이다. /조의준 기자
그는 최근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드디어(!) 위로 솟는 기둥 4개를 내년에 세우기로 한 것이다. 물론 설계도의 총 기둥 수는 48개에 달한다. 이 성당은 가로·세로 150m, 높이 85m의 초대형 건물로 총 3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질 예정이다.

1500억원으로 예상되는 건립비는 철저히 일반 신도들 성금으로 충당된다. 몇몇 재벌들이 후원의사를 밝혔지만 거절했단다. “돈은 많이 들어오나요?” “내일 밥 지을 돈도 없어.” “그럼 어떻게?” “은행에 돈 많잖아!” 천하 태평이다.

갑자기 변 신부가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컴퓨터 앞으로 갔다. “여기 봐요. 우리가 중국어·영어·불어·일본어 등 8개 국어로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유독 일본 사람이 홈페이지에 잘 안 와요. 여기 다녀가는 일본 사람은 많은데도, 클릭 수는 중국이나 스페인 사람보다 적잖아. 왜냐하면 자기들은 이런 거 못 만드니깐. 이건 돈만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 킥킥.”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 ‘이르면’70년 뒤 완공될 천진암 대성당 조감도. /변기영 신부 제공
“저…, 이렇게 큰 성당이 왜 필요한지요. 이 돈으로 남을 도우면….” 변 신부는 “돈 자랑하려고 건물 짓는 게 아니에요. 조선왕조 500년간 불교를 탄압했지만, 살아남은 이유는 해인사, 송광사 같은 5대 사찰이 중심을 잡아줘서요. 천주교도 토착화하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을 대성당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열변이 터졌다. “건물을 짓는 데는 10년이면 충분하지만 안을 채우는 데는 앞으로 100년도 더 걸릴 거예요. 한국의 미켈란젤로, 다빈치가 내부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도록 할 거예요. 로마의 베드로성당 같은 문화재가 될 거야.”

그래도 요즘 소원 하나를 거의 다 이뤘다. 바로 대성당터 바로 옆에 짓고 있는 ‘한국천주교 천진암 박물관’이 내년 6월 완공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3층 규모로 한 층 면적이 1650㎡(약 500평)에 달한다. 이 박물관은 대성당과 달리 ‘급하게’ 지었다. 1982년 처음으로 건설을 꿈꾸기 시작한 뒤 26년, 1994년 기공식 후 14년 만이다. 변 신부는 “대성당은 신도들을 위한 것이지만 박물관은 일반 국민들을 위한 거라서 빨리 지었어요.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천주교 유물뿐 아니라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생활상까지 함께 볼 수 있거든요”라고 했다.

변 신부의 걸음은 활기찼다. 일흔이 코앞이지만 머리는 여전히 검었다. “염색한 거 아니에요. 내가 산에서 나물 캐먹는 산돼지라서 그래. 산 내려가서 백돼지가 되면 죽어요. 대성당 짓는 꿈에 젊게 사는 거지.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