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수요일>(2010. 2. 3. 수)
<믿음, 기적, 사랑, 희망>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더욱이 신부이면서, 병은 왜 걸렸냐?
네가 믿는 하느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나보다. 아니면 하느님이 없든지.“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병에 걸린 것은 나 자신이 몸 관리를 안 했기 때문이다.
이건 하느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사람들이 또 묻습니다.
“하느님이 있다면, 왜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났냐?
지구가, 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하느님이 없다는 것이다.
있다면 무능력하거나 무관심한 것이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 탓 좀 하지 마라.”
성경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선 ‘사랑’을 중심으로 생각해 봅니다.
부부 사이에 사랑이 없어도 살긴 삽니다.
서로 필요에 의해, 또는 욕망에 의해 살긴 사는데,
사랑이 없다면 믿음도 없고 희망도 없고 책임감도 없습니다.
무슨 계약 같은 것으로 묶어놓지 않았다면,
한쪽이라도 상대방이 싫어졌을 때,
또는 필요나 욕망이 사라졌을 때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사실 계약이라는 것도 깨면 그만입니다.
만일에 부부가 사랑도 없이 그렇게 산다면 그게 어디 부부로 사는 것입니까?
그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부부가 부부로 살 수 있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다가 다투고 싸워도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필요나 욕망을 초월한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믿음도 생기고 희망도 생기고 책임감도 생깁니다.
무신론자들 생각처럼 하느님이란 원래 없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도 이 ‘지구’가 특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하느님이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졌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인간 세상이 달라질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느님이 없어도 우선 당장에는 살던 대로 잘 살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없다면(‘신’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선과 악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이 없으니 영혼도 없고, 내세도 없습니다.
영혼도 없고 내세도 없으니 땅만 차지하는 무덤은 필요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빨리빨리 잊어버리고 산 사람이나 잘 살아야 합니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사람은 빨리빨리 제거해버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생각을 밀고 나가면,
어차피 신이 없으니 인과응보 같은 것도 심판도 지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운 사람, 싫은 사람은 죽여 없애면 그만입니다.
아니, 미운 나라는 다 폭격해서 제거하면 그만입니다.
지진? 복구 작업과 구조 작업은 왜 합니까?
불쌍하니까, 아니면 나중에 나도 그런 일 당할 수 있으니 돕는다?
유물론자들, 무신론자들은 경제성을 먼저 따질 것입니다.
복구 작업, 구조 활동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면 그냥 제거해 버리자고 할지도 모릅니다.
결론 - 하느님이 없어진다면(‘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약육강식의 짐승 세계로 변할 테니까.
(하느님이 원래 없었다면, 인간은 여전히 짐승의 상태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신론자들은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있다면 왜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났냐?
‘신종 플루’, ‘에이즈’ 같은 전염병은 왜 생겼냐?
암을 비롯해서 온갖 불치병은 왜 생겼냐?
지진 말고도 해일, 화산 폭발, 태풍, 가뭄, 홍수... 기타 재난들은 왜?
인간 세상의 모든 사건, 사고, 범죄, 불행, 고통, 슬픔...
하느님이 있다면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이냐?
착한 사람은 고통을 받고 악한 사람은 잘 먹고 잘살고.
하느님이 있다면 분명 인간들에게 관심이 없거나 사랑이 없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반문하겠습니다.
도대체 어떤 세상을 바라는 것인가?
완벽하게 프로그래밍 되어서 무결점 상태인 세상을 바라는 것인가?
성경에 그런 세상을 묘사한 내용이 있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뒤에 올 하느님 나라가 바로 그런 무결점의 완벽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은 지금 당장 그 세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지금 당장!!!
불행, 고통, 슬픔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라고 하느님께 요구합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한다면 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려면 우선 먼저 믿음 없는 무신론자들부터 제거하시겠지요.
그래서 무신론자들에게 묻습니다.
하느님이 존재하고 있고,
그 하느님이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너희들 무신론자들부터 제거하시겠다고 한다면 받아들이겠느냐? 라고.
못 받아들일걸?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무신론자들과 함께 범죄자들과 독재자들을 모두 제거하겠다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회개할 테니 살려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지.
지금이라도 회개할 테니... 라고?
그럼 미루지 말고 지금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무신론자, 범죄자, 바로 당신들을 제거하시기 전에.
사실 아이티 지진 자체를 하느님 탓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지진, 태풍, 홍수... 등은 ‘지구’라는 이 별의 자연 현상일 뿐이고,
인간들의 능력이 아직 ‘지구’라는 별의 관리를 잘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또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건 지구가 생긴 이후에 죽 있었던 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따집니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않은가? 라고.
죽은 사람은 억울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슬프고, 고통스럽고...
맞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죄가 더 많아서 벌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보다 더 착해서 살아난 것도 아니고...
일단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재난 때문에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느님을 탓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하느님의 존재가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도 잘 드러나고.
또 서로 돕는 ‘사랑’에서 하느님의 존재가 제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재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바로 하느님을 드러내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인간 세상에 사랑이 있는 한, 그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도 계십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면, 사랑은 곧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기적은 인간들의 사랑을 통해 세상에 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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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기적을 행하시지 못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고,
기적을 행했더라도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원래 사랑과 자비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 그 자체가 곧 기적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것은 그 사랑과 자비를 믿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믿지 못하면?
받을 사랑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준다고 해도.
결국 예수님은 나자렛 사람들을 짝사랑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은 우리를 짝사랑하고 계십니다.
늘 믿음이 오락가락하고, 하느님 탓만 하는 인간들을,
서로 사랑을 실천하지는 않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인간들을,
자연 재난만 발생하면 항상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인간들을,
선과 악을 구별하지는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인간들을,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지는 않고 항상 청하기만 하는 인간들을,
진짜 기적을 기적으로 알아보지 못하면서 늘 특이한 기적만 바라는 인간들을...
저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이 있으니.
숨 쉬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자체가 은총이고 기적이라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지금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사람도 있고,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대신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그 억울함 대신에 저 세상에서 더 큰 사랑 받고 있다고.
지금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도 언젠가는 그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해도, 그 이상의 더 큰 은총이 있을 것이라고.
믿음은 곧 희망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그곳에 함께 계시고,
우리가 믿는 그 순간 이미 기적은 시작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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