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들’에 의미 부여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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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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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미술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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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가 되어서 행복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전하는 게 꿈인 소년이있었다. 이 소년은 후에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는 말한다. “사진은 사물의 한 지점을 들춰내서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은 행복한 편지를 전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나무 사진으로 알려진 이명호의 얼굴은 언제나 해피 마스크다. 늘 웃고 있다. 그의 기분 좋은 웃음은 주변 사람에게 곧 전염된다. 우리가 보는 것은 한 장의 사진이지만,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아마도 그와의 작업은 그렇게 즐거운 것이리라. 이명호의 이름을 알린 것은 자연에 존재하는 나무 뒤에 커다란 캔버스 천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은 작품들이다. 이명호의 작업은 나무를 찾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는 전국 각지를 돌며 ‘느낌이 좋은 나무’를 찾는다. 나무를 발견했다고 곧바로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밤새 쓴 연애편지처럼 한순간의 느낌이었을 뿐인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기분으로 그는 한번 갔던 장소를 계속 반복해서 간다. 그러면서 그 나무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계절을 찾고, 하루 중 가장 맞는 시간을 고른다. 바람의 세기, 아침 저녁의 빛을 꼼꼼히 살피고 촬영을 위한 가장 좋은 시간을 택하면, 나무의 크기에 맞는 캔버스 틀을 짜기 시작한다. 캔버스 틀을 세우는 일도 만만치 않다. 생산되는 캔버스의 한 폭은 최대 180cm이기 때문에 나무의 크기에 맞게 캔버스를 이어 붙여서 쇠 프레임을 넣어 고정하고, 기중기로 세우는 작업을 거친 후 촬영한다. 그러나 이렇게 골라 놓고도 주인의 허락이 나지 않거나 지형상 혹은 간혹 트레일러가 못 들어가서 포기해야 하는 곳이 생기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올해 초 뉴욕의 가장 중요한 갤러리 중 하나인 요시 밀로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진 후 출품작 전부 솔드 아웃되었다. 그는 이 갤러리에 전격 발탁되어 전속 작가로 활동 중이다. 사실 뉴욕의 요시 밀로 갤러리에서의 전격 발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시작은 2008년 Photography Museum of Amsterdam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여름 호에 작품이 소개되면서다.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유명한 사진 딜러인 요시 밀로가 연락해 온 것이다. 잡지에는 연락처가 게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요시 밀로는 중앙대학교로 팩스를 보냈다. 광고 종이인 줄 알고 버리려던 것을 행정직원이 ‘이명호’라는 이름을 보고 연락해 주었다. 하마터면 매우 중요한 접촉의 단초가 사라질 뻔했다. 전시 오프닝 때는 서 있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이 전시를 본 매리 분, 제임스 코한 같은 뉴욕 미술계의 거물들이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뉴욕 미술의 최고 권위자들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은 것이다. 평도 물론 좋았다. 그의 작품은 “동양의 선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사진”이라는 평을 얻었다. 혹자는 대지 미술가 크리스토의 작품과 비교하면, 크리스토는 나무를 포장해서 감추었지만, 이명호는 자연의 나무를 캔버스에 담아 드러냈다고 했다. 감추는 대신 드러냈다는 점은 작업의 핵심이다.
그의 작업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이명호의 작업은 평범한 어떤 것들의 이름을 불러 의미 있는 존재를 만드는 과정이다. 캔버스를 배경 막으로 설치하면 그간 보지 못했던 나무의 윤곽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의 사진 속 나무들은 나무라는 보통명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고유한 존재가 된다. 일반적으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그 대상은 더 잘 볼 수 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자체를 작품으로 해보고 싶었다. 시공간의 한 지점들을 들춰내 사물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나무를 소재로 했지만 일종의 대유법적인 것으로, 환경으로부터 격리해 소격효과처럼 바라보는 것이 내 작업의 목표다.”
자기 감상과 개념을 강요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동양의 仙사상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호는 종교나 철학에 심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로지 예술에 심취한 사람이다.
![]() 세상의 이치를 수학으로 풀려 했던 청소년기 지나 사진 입문
이러한 예술에의 심취는 그의 독특한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서울대학교 수학과를 중퇴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했다. 우체부가 꿈이었던 소년은 수학의 재미에 빠졌다. 세상 모든 것을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우주의 진리에 이르리라 믿었다. 그는 이 믿음이 어떻게 깨져 나갔는지를 담담히 이야기한다. 봉천동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그는 창문을 이불로 막고 모든 소리와 빛을 차단하고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수학적으로 세상을 해명하는 작업을 했다. 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숨도 쉬지 않았다. 숨을 쉬면 생각의 끈이 끊어질 것 같아서였다. 호흡 부족으로 눈에 핏줄이 다 터져서 빨갛게 되고 눈 밑 다크 서클이 먹물처럼 번져 나갔다. 그 얼굴로 전철을 타면 모두 미친 사람인 줄 알고 피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눈에는 철저하게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상경하신 어머니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 일을 계기로 논리적 세상 해명은 중단되었다. 말이나 논리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건 그냥 그런 것이었다. 논리를 벗어나 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예술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을 다 알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잘못 알아들었는지 “너무너무 행복하다”라며 또 웃는다. 그의 작업 과정은 앞서 설명한 대로 인내와 여러 사람들 간의 복잡한 협업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그는 모두 즐겁다고 한다. 논리의 족쇄에서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삶을 대하는 기본 태도가 바뀌었고, 그러면서 나온 작업이 바로 나무 바라보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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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는 고비 사막에 다녀왔다. 새로운 작품을 위해서다. 동해 바다를 촬영해 캔버스에 프린트한 후 그것을 고비 사막의 능선에 펼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바다와 사막이 그의 카메라 안에서 만났다. 캔버스의 길이는 장장 3km를 넘는데, 그 마을 고등학교 전교생과 교장선생님이 함께 설치했다.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내면에는 ‘행복한 우체부’를 꿈꾸는 행복한 소년이 여전히 살아 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구름을 감싸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또 섬 전체를 감싸는 일도요. 예를 들어서 오륙도를 감싸서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라보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 나와서 박수치고 얼마나 재미있을지….” 보통명사로만 일컬어지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고유명사로 만드는 그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이명호 덕분에 나에게도 하늘의 구름은 그냥 구름이 아니게 되었다. 더불어 나도 꿈을 꾸어본다. 그가 구름을 캔버스에 담은 작품을 들고 나타나는 꿈을. 올 가을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오덴세 트리엔날레, 내년 3월에는 성곡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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