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토마스) 의사의 만주 하얼빈역 의거가 26일로 꼭 100년이 되는데도 '신앙인 안중근'의 면모는 여전히 묻혀 있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사용할 총알에 십자가를 새기고, 체포된 후 사형 집행일을 주님 수난 성금요일로 잡아 달라고 청했는가하면, 장남을 사제로 키워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불꽃 같은 생애와 영웅적 의거는 천주교 신앙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다. 독립운동 연구가들도 "그의 민족애와 정의감은 천주교라는 텃밭에서 자랐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교회는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에 대해 관심이 덜한 것 같아 안타깝다. 안 의사가 신앙 안에서 살다 신앙적 원의로 민족을 위해 몸바친 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신자들이 부지기수다.
그 이유는 당시 서양 선교사들이 그가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배척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10여 년전 고 김수환 추기경 등 몇몇 성직자들 노력으로 역사 인식의 오류는 바로 잡혔지만 후속 연구나 추모사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안 의사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는 선교사로서의 안중근 모습이 많이 나온다. 그는 교리 강연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수백 리 길을 마다하고 뛰어다녔다. 자서전만 유심히 살펴도 이 시대 신앙인들에게 유익한 영적 유산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의거 100주년을 계기로 신앙인 안중근에 대한 연구와 추모사업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