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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요양원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평신도 카리스마 끌어안아야..

도구 Ludovicus 2009. 10. 18. 22:52

수도원을 요양원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평신도 카리스마 끌어안아야..
[박문수 칼럼]
2009년 10월 15일 (목) 09:16:19 박문수 9783722@hanafos.com

오늘은 수도회의 미래를 한번 조망해 보려고 한다. 다른 나라 특히 영미 계통 국가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수도회의 공통적인 쇠퇴 원인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 수도회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수도회의 쇠퇴가 수도생활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도회의 모습은 크게 성소 감소 내지는 중지, 교회 안팎에서 활동 범위 축소,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지금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활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사진/한상봉
당분간은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겠지만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추세를 보더라도 최근 15년 동안 성소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그 이전 시기에 비하여 절반 이하로 줄었고, 성소자 평균 연령도 높아졌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활동범위도 크게 축소되었다. 수도생활을 과거만큼 매력적으로 느끼는 젊은이들이 크게 줄고, 수도자 자신이 이런 변화 속에서 크게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도 커졌다. 이로 인해 역할 정체성 혼돈이 촉진되었고, 이는 수도생활에 대한 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대개 이런 경우에 수도회는 세속과의 거리를 좁히기보다 넓히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현재와 같이 수도회와 세속과의 거리가 좁아진 상황에서는 수도복과 수도자들의 기도시간 정도에서 차이를 보이는 데서 더 나아가 더욱 금욕적이고, 청빈생활은 더 엄격하게, 투신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생활양식은 더 단순해져야 한다.

이렇게 세속과의 거리를 넓히기 전에는 과거의 매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다 하더라도 과거만큼 성소자가 급격하게 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던 시기는 적어도 15년 이전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 때는 거의 정점이었기에 뒤에 전개될 상황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불가불 지금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데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수도회들이 대부분 유지 관리에 신경을 쓸 뿐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수도회 방향을 한 순간에 돌리기에는 몸이 너무 무겁다. 그래서 못 움직이고, 못 움직이다 보니 방향을 찾을 기회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몸이 더욱 무거워진다. 큰 배가 좌초할 때 중심을 잃으면 그 안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기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현재 대부분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이런 방향을 기정사실화한다면 수도회는 한편으로 평신도 영성의 시대가 된 것을 긍정하고 이를 돕고 촉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평신도들 가운데 축성생활에 가까이 살고 싶은 이들을 불러 모아 함께 그 풍요로운 카리스마를 나눠야 한다.

그 다음 앞에서 말했듯이 더욱 금욕적이고 청빈해야 하며 기도생활에서도 더욱 탁월해야 한다. 더 낮고 가난한 곳으로 향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수도원을 요양원으로 만들지 않는 길이다. 마지막도 시작만큼 열정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도 소생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다른 뜻이 있는 것이다. 다른 형태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부르고 계신 것이다. 이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박문수 (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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