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연중 제18주간 토요일)(2009. 8. 8. 토)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예수님과 세 제자가 산에 올라가 있는 사이에
어떤 사람이 아들을 고쳐달라고 청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모' 하시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안 계시니까 제자들에게 부탁했는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사람의 아들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산에서 내려 오신 예수님이 아이를 고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마태오복음에는,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라고 예수님의 답변이 기록되어 있고,
마르코복음에는,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 기도... 같은 뜻의 답변입니다.
자,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 것은 그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파견된 제자들은 복음을 선포하면서,
마귀들을 쫓아냈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왜 그 아이는 고치지 못했을까?
제자들 자신들도 의문이었겠지만 복음서를 읽는 우리에게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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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도 주셨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 손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파견된 제자들은 오로지 하느님만 의지하면서 활동했습니다.
복음을 선포했고, 마귀를 쫓아냈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다음에 예수님께서 권한을 모두 거두어들이신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을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파견되어 활동하면서 했던 일들 때문에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빈 손으로 떠나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한 것은,
그것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성과에 취해서 자신들이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에 '기도가 아니면...' 이라는 예수님의 답변이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고치려고 할 때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빈 손이었을 때에는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께 기도를 했었는데,
뭔가 성과를 거둔 다음에는 빈 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없어지거나 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음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자신들의 능력만 믿고 아이를 고치려고 했던 것.
자만심, 그리고 기도 부족 ... 그것은 곧 믿음과 반대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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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다시 빈 손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나는 하느님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곧 믿음이고,
그 마음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진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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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예수님께서 덧붙인 말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꾸 어떤 초능력을 연상합니다.
'믿음만 있다면 정말 산을 옮기고, 바다를 가르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그래서 그런 능력이 없는 나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초능력을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산을 옮길 필요가 있다면 굴삭기를 빌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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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 묘사되어 있는 사도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한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고,
설교 한 번으로 수천 명을 개종시키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모습은 정말로 산을 옮기는 초능력자들 같습니다.
정말 못할 일이 없는 모습입니다.
사도들 자신들도 그런 능력을 보였지만,
하느님께서 사도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을 때 지진을 일으키고 쇠사슬을 풀어내고
천사들을 보내서 사도들을 인도하고...
그런데 사실... 그게 먼 엣날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이천 년 역사가 바로 그렇게 산을 옮기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교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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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산을 옮겨야 한다면 굴삭기를 동원하면 됩니다.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리고 온갖 중장비를 동원하면 금방 끝낼 수 있습니다.
초능력이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티브이에 나와서
숟가락을 구부리기도 하고, 멈춰 서 있는 시계를 움직이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뻰찌로 하면 금방 할 수 있는 일을 왜 저렇게 애를 쓰나?
시계가 멈춰 섰다면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 되는 것이고...
산을 옮기는 것은 쉽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고, 세상을 바꾸는 일입니다.
특히 어떤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휩쓸려 가는 세상을 바꾸는 일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을 순교자라고, 성인이라고, 위인이라고,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신앙과 종교 말고도...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빈민구제를 위해서,
그 외에도 숭고하고 거룩한 일들을 하면서
목숨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런 거창한 일 말고...
우리 주변의 작고도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는 분들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꽃동네를 설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최귀동' 할아버지,
그분은 분명 태산을 옮긴 분입니다.
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 아빠들도
사실 산을 옮기는 믿음과 사랑으로 아이를 키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보 노무현, 산을 완전히 옮기는 일에 실패했다고 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산의 일부는 무너뜨렸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작업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고.
한 사람의 작은 믿음과
한 사람의 작은 사랑이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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