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연중 제18주간 화요일)(2009. 8. 4. 화)
<주님이시거든...>
빵의 기적을 행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당신은 산에서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을 향해 가십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질문.. "예수님은 왜 물 위를 걸어가셨을까?"
답은... 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웃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호수에 다른 배가 없었고, 제자들을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고,
제자들에게 가긴 가야 하는데,
날아가는 것보다는 물 위를 걷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셨겠지요.
그래서 그냥 간단하게 물 위를 걸어서 가신 것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일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묘사 없이
그냥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는 간단한 언급만 하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제자들이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복음서라는 책이 예수님의 부활 후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그때 쯤에는 물 위를 걸었던 일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다만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 빠진 것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일은 당연하게 생각되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흉내 내다 물에 빠진 것은 특별하게 기억된 것입니다.
질문..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왜 '유령이다!' 라고 소리를 질렀을까?"
답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 무섭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직 어두운 새벽이고, 파도에 시달리는 중인데...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 물 위를 걸어서 다가오면 그게 유령이지 사람이겠습니까?
제자들이 겁에 질려서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른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걸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탓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우리들도.. 물 위를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그건 믿음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예고하신 것처럼 물 위를 걷겠다고 미리 예고하신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밝았거나 가까웠던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른 일 자체는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겁내지 말라고, 당신이라고... 달래 주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겁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베드로는 왜 물 위를 걸으려고 했을까?"
답은... '주님이시거든' 이라는 말에 대답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주님이 아니라면 우리에게서 떠나가라... 가 될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전날 저녁에 빵의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입니다.
이제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걷는 일 자체에 대해서는 놀라지도 않습니다.
주님이시라면 능히 그러실 수 있다고 믿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선, 진짜 주님이신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시라면 주님의 권능이 어디까지인지, 그것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시거든..." 이라고 조건을 붙인 것입니다.
진짜 주님이시라면,
빵 다섯 개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신 주님이시라면,
나도 물 위를 걷게 해주실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이시라면...
거기까지도 베드로를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 후에 예수님을 보고도 못 믿었던 것에 비하면,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못한 것에 비하면,
아직 주님이시라는 것이 확인이 안 된 지금 상황에서
주님이시라는 것을 못 믿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잘못은 하나입니다.
꼭 그런 식으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확인해야 했는가? 입니다.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보고 믿었던 것처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믿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점에서 제자들은 아직 미숙하고 초보적인 단계에 있습니다.
아직은 예수님의 음성만으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제자가 된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아직 믿음이 없다고 제자들을 탓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대신 베드로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질문... "베드로는 왜 '명령'을 청했을까?"
답은... 그게 기도의 모범이 된다는 것.
베드로의 말을 보면,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라고 합니다.
"명령하십시오."
이 말은 좋은 묵상 주제가 됩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주님, 저도 물 위를 걷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라고 합니다.
그는 명령을 청합니다.
이건 아주 멋진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면 마귀들이 쫓겨나고, 병자들이 낫는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령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이 있는지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의 말투를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께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라는 기도를 하지 말고,
주님의 종으로서 명령을 내려주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보다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백발백중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있었는데도 공부를 안 해서 떨어지면 자기 탓이고,
예수님의 명령대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합격하면
그건 이중으로 잘 한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충실하게 순종한 일, 그리고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한 일.
질문... "예수님은 왜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으라고 하셨을까?"
답은... 믿음을 굳세게 해주기 위한 시련이었다, 라는 것.
예수님은 베드로가 물에 빠질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자신이 직접 물에 빠질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건 그를 단련시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될 때, 목숨 걸고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몇 시간 뒤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그걸 대비해서 미리 훈련시킨 것인지도 모릅니다.
직접 물에 빠져보고, 믿음이 흔들리는 것도 겪어보고...
그리고 믿음이 약하다고 예수님께 꾸중도 듣고.
그런 저런 시련을 겪어야 나중에 위대한 사도로 거듭날 수 있으니까.
질문... "베드로는 왜 물에 빠졌을까?"
답은... 성경에 나오는 대로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고', 그래서 빠졌습니다.
그의 믿음을 흔든 것은 거센 바람이었습니다.
그가 의심한 것은 주님도 아니고, 주님의 권능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입니다.
주님은 이미 물 위를 걸어서 오셨고,
베드로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에 대해서는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베드로의 말에 있습니다.
그는 물에 빠지자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믿었기 때문에 주님께 살려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바로 자기 자신을 의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내가 주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
내가 저 거센 바람을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의심.
이것도 주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시험입니다.
앞으로 전체 교회를 돌보면서 박해를 헤쳐나가야 할 수제자,
사도단의 대표로서, 전 신자들의 어버이로서
온간 풍파를 헤치고 나가야 할 베드로였기 때문에,
미리 거센 바람으로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련을 거듭 겪으면서 베드로는 위대한 사도로 거듭나게 됩니다.
질문... "제자들이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이유는?"
답은...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 일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고,
그 일 자체에 대해서는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권능을 확인하고 싶어서,
또는 진짜 주님이신지 확인하고 싶어서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조금은 물 위를 걸었습니다.
제자들이 놀란 것은 호수의 바람과 파도가 예수님께 굴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의 힘도 예수님 앞에서는 무기력한 것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은 이미 갈릴래아 호수의 횡포를 충분히 겪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그 호수의 풍랑이 공포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람과 파도가 예수님 앞에서는 온순해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고,
죽은 사람을 살려내시는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자연마저도 굴복시키는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태오복음 8장23절-27절에 예수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때 제자들의 반응은,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라고 수군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신앙고백은 없었습니다.
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라고 놀라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14장에서는 드디어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8장에서의 놀라움이 14장에서 확신으로 바뀐 것입니다.
질문...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답은... 우리는 시험, 시련,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다보면 별별 고난을 다 겪게 되지만,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시험일 가능성이 큽니다.
고난을 극복하면 할수록 믿음이 깊어지지만,
스스로 무너지면, 믿음도 무너지고, 그 다음엔 바랄 것도 청할 것도 없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자기 자신의 기도를 믿어야 합니다.
기도했고, 그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신다고 믿는다면,
그 기도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기도했으면서도,
그 기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면 대체 기도는 왜 하는 것입니까?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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