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연중제17주일(090726)

도구 Ludovicus 2009. 7. 28. 06:17

<연중 제17주일>(2009. 7. 26)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 그 아이>

 

7월 26일의 복음 말씀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이 배불리 먹은 기적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나타내는 기적인데,

이 기적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가? 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모든 사람이 자기 것을 내놓고 나눠먹었다. (합리주의자들의 해석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든 것이 곧 예수님의 기적이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군중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지도자로 보였기 때문에.

 

2. 예수님이 글자 그대로 빵을 많게 했다. (전통적인 해석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시니 하느님의 기적을 행하셨다, 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의 빵은 곧 구약시대의 '만나'처럼 하늘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한 것은

  예수님을 구약의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 보았다는 뜻이 됩니다.

-------------

 

어떻든 둘 다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입니다.

그런데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하든

중요한 것은 처음에 빵과 물고기를 내놓은 아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아이가 빵과 물고기를 내놓음으로써 기적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행하신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기적을 시작한 사람은 그 아이입니다.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 그 아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누구의 아들인지...

몇 살인지, 여자애였는지 남자애였는지... 모릅니다.

 

성서학자들도 주목하지 않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도 주목하지 않는

그냥 영화의 엑스트라 같은 존재인 그 아이.

 

저는 그 아이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사람들 눈에도 뜨이지 않고,

복음서 저자들도 그 아이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을 정도로

보잘것없고 평범했던 그 아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도록 옆에서 도와드린 천사였을까요?

 

모릅니다.

하여간에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 아이는 말없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원한다면 자기처럼 하라고.

자기 것을 스스로 내놓아야 기적이 생긴다고.

 

자기 것은 내놓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기적만 바라는 것은

아주 아주 염치 없는 짓이라고,

그 이름 없는 아이는 행동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

 

교도소 사목할 때,

가끔 빵이나 과일 같은 간식을 가져가서 나눠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봉사자들이 직접 하나씩 나눠주면 모자라지 않는데,

각자 자기 몫을 가져가라고 놔두면 항상 모자랐습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남의 몫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교도소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당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상황만 조금 다를 뿐, 자기 욕심을 먼저 챙기는 모습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자기가 배고픈 것을 참고,

배고파하는 사람을 위해서 먹을 것을 모두 내놓은

그 아이의 사랑과 희생정신이 오늘날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그 아이는 먹고 남은 것을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먹을 것을 전부 내놓은 것입니다.

 

사랑이란,

내가 배부른 만큼 상대방을 배부르게 해주거나,

상대방이 배고픈 만큼 나도 배고픔을 받아들이는 것.

 

사랑이란,

사랑 때문에 생기는 고통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기쁨과 쾌락만 즐기려고 하고 고통을 거부한다면 참 사랑이 아닙니다.

------------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남이 밥 먹을 때 물끄러미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배고픈 사람이 보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혼자서 태연하게 밥을 먹고 있는 그 사람이 더 불쌍합니다.

그의 육신은 배부르겠지만 그의 영혼은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 Fr.송영진 모세
글쓴이 : Fr 송영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