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9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도구 Ludovicus 2009. 7. 22. 07:35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

제1독서 아가 3,1-4ㄴ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복음 요한 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악마가 유혹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이랍니다. 물론 이번 한 번만 이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번 한 번만’이라는 유혹에 우리들은 계속해서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게 들리는 중독성이 매우 강한 말입니다. 한 번 ‘이번 한 번만’이라고 마음먹게 되면, 그 다음에도 ‘이번 한 번만’ 또 그 다음에도 ‘이번 한 번만’이라며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타협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악마의 유혹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기꾼인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부족한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상당히 관대합니다. ‘어쩔 수 없었어. 아마 다른 사람도 그랬을 거야.’하면서 스스로에게 위안을 던집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가요? ‘어떻게 유혹에 넘어갈 수가 있어?’라고 말하면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지요.

오늘 우리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루카복음에 의하면 일곱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회개한 뒤에 눈물로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리지요. 그리고 그 뒤로 예수님께 대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예수님 죽음의 순간에도 함께 하셨으며, 오늘 복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까지도 제일 먼저 목격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죄를 이제 더 이상 반복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께만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릴 때 바리사이들은 이렇게 생각하지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여인의 죄라는 것은 과거의 일회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거를 소급해서 예수님까지도 판단하는 큰 죄를 범하는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죄는 꼬리에 꼬리를 낳아서 무수한 죄를 양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생각을 갖고서 죄를 계속해서 반복하지 않고, 마리아는 딱 한 번의 죄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예수님께만 집중하며 살았기에 “마리아야!”라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곧바로 “라뿌니!”하며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참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번 한 번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죄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집중하면서 죄를 끊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이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힘을 늘 갖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힘은 늘 갖고 있다.(스펜서 존슨)



웃음이 있는 자에겐 가난이 없다(‘좋은 글’ 중에서)

거리를 거닐 때마다 놀라는 일중의 하나는
지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에
웃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살기가 험악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서 인간 외에
웃을 수 있는 동물은 없습니다

사실 아무리 어려웠고 괴롭던 일들도
몇 년이 지난 후에 돌이켜 보면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맙니다
고통도 환난도 좌절도 실패도 적대감도
분노도 노여움도 불만도 가난도...
웃으면서 세상을 보면 다 우습게 보입니다
그래서 웃고 사는 한 결코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백번의 신음소리 보다는
한번의 웃음소리가 갖는 비밀을 빨리 터득한 사람이
그 인생을 복되게 삽니다

연약한 사람에겐 언제나 슬픔만 있고
위대한 사람에겐 언제나 소망의 웃음만 있습니다

더 잘 웃는 것이 더 잘 사는 길입니다
더 잘 웃는 것이 더 잘 믿는 것입니다
더 잘 웃는 것이 더 큰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을 때
우리는 부유해 집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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