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가톨릭 성지

[스크랩] 감곡성당 - 은총과 치유의 빛이 강한 곳

도구 Ludovicus 2009. 6. 26. 06:37

 

 

2008년초에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했지만

주변환경의 변화에 내내 힘들게 보냈다.

2009년은 정말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방송과 신문에서 연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금년 한해 

주님 뜻대로 하시라고 맡기자며

순례하고 싶었던 성당을 떠올리니

일순위로 생각나는 성당이 감곡성당이다.

 

사진은 감곡성당 뒤의 매산 정상에 있는 임가밀로 신부님의 성광을 든 모습

 

 

감곡성당은 112년전에 성모님께 봉헌된 곳이다.

이때부터 성모님과 관련된 숱한 이야기가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성당 중앙 위에 안치된 성모님은 육이오때 인민군으로부터

7발의 총탄을 맞은 자국이 있다.

그 총탄은 뒤로 나간 자국이 없어서

아직도 몸안에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모님의 칠고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성모칠고를 묵상하게 한다.

인민군은 성모님상을 아예 파괴하고자 하였으나

성모님의 얼굴이 인민군쪽을 돌아보자

인민군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나중에 전황이 바뀌어 인민군이 북으로 도주할 때에도

마을 청년들이 이 성당에 숨어있었으나 인민군들이 감히 들어오지 못한 곳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순례하고 있다.

이 성당은 바오로의 해 순례성당으로 지정되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임가밀로 부이용(프랑스명)신부는

루르드에서 2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출생하여

어머니와 함께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며 성장하였다.

 

제대 중앙에 안치된 성모님상은

루르드에서 주문 제작하여

안치되었으며

임가밀로 신부의 성모신심은 감곡성당에서
꽃을 피운다.

 

 

들판에서 바라본 성당 전경 -

왼쪽부터 사제관과 수녀원, 성당, 우측에 매괴박물관, 어린이집 등이 보인다.

성당은 마치 명동성당 축소판처럼 보인다.

미 매산에는 묵주기도 20현을 묵상할 수 있고

십자가의 길을 바칠 수 있다.

매산을 순례하여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치유되고

아기를 못 가진 사람들이 아기를 가져,

외교인들도 많이 순례한다고 한다.

 

이 감곡 성당은 사제 수도자가 많이 나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150명의 사제, 수도자가 나와 성소의 못자리이기도 하다.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후 받은후 바로 입국하여
그다음해인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 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 하던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밑에 대궐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 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그즉시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
라고 기도 하였으며,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1882년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매괴성월인 10월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성당이 된 것이다."( 이부분 감곡성당 홈페이지에서 발췌)

김웅렬신부님의 강론을 떠올려보면

이 때 세도가 당당하던 민응식이 팔지도 않았지만

기적의 패를 집둘레 묻고 기도하던 임 가밀로 신부님의 기도대로

임오군란 때 전소되어 헐값에 매물로 나온 것을

 싸게 구입하였다는 일화가 또한 전해진다.

 

  

성당 뒷산인 매산에는 묵주기도 20단의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도록

부조로 새겨놓았다.

 

이 매산에는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려고

성당보다 높은 산 중턱에

1943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임가밀로 신부는 그 자리에 기적의 패를 묻고

공사가 중단되게 되면 이 자리를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하였다.

 

신사공사중

여러가지 기상이변(벼락, 산사태)및 큰 짐승 출현등으로

일본인들은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철수한다.

 

임가밀로 신부님의 의향대로

1955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봉헌되고

성체거동 때 현양대회 미사를 지금까지 지내오고 있다.

 

 

매산 정상부근.

산 중턱에서 시작된 십자가의 길 14처의 마지막 14처가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임가밀로 신부님의 성체거동때 성광을 든 모습과

15미터 높이의 십자가상과 성모마리아, 사도요한등의 상이 모셔져있다.

 

 

 

첫 사진의 옆모습.

임가밀로 신부님의 성광을 든 모습.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전부터 사랑했습니다"라는 현수막의 글귀가

가슴에 남는다.

임가밀로 신부는 감곡성당 초대신부로 부임하여 1947년 돌아가실 때 까지

이곳에서 소임을 다한다.

 

 

매괴박물관.

본당설립시부터의 유물과 사진자료가 있으며

아담하고 예쁜 성체조배실과

성서를 필사하도록 준비가 되어있다.

내실있는 곳이므로

자세히 둘러보고

성체조배와 성서필사 이어쓰기를 하고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제관과 수녀원. 

 

 

박물관 쪽에서 바라본 성당.

이 성당은 1930년에 완공되었으며

충북지방문화재 188호(?)로 지정되어있다.

 

 

서울의 본당 못지않게 크리스마스 트리와

야외 구유가 정성껏 설치되어 있다.

 

 

이 빛이 나를 유혹하여 많은 사진을 촬영하게 하였다.

 

 

초승달과 샛별이 밝게 비추고 있다.

동방박사를 인도하던 별들의 밝기가 저 정도 되지않았을까?

올 한해도 동방박사를  별로 인도하신 것처럼 

내  앞길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시기를 청한다.

 

출처 : 야곱의 단상
글쓴이 : 야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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