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9년 5월 28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도구 Ludovicus 2009. 5. 28. 08:26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5월 28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2,30; 23,6-11

그 무렵 30 천인대장은 유다인들이 왜 바오로를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바오로를 풀어 주고 나서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바오로를 데리고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23,6 의원들 가운데 일부는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바오로는 최고 의회에서 이렇게 외쳤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7 바오로가 이런 말을 하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졌다. 8 사실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바리사이들은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9 그래서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바리사이파에서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10 논쟁이 격렬해지자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려가 그들 가운데에서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부대에 명령하였다.
11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복음 요한 17,20-26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22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서 상기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오늘 저에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주님께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그러니? 어서 말해 보아라.”

“오늘 성당에서 집으로 오다가 차가 일곱 바퀴나 굴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말짱합니다.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쳐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감사하다.”

“아니, 아버지도 사고가 나셨었어요? 얼마나 큰 사고였는데요? 아버지는 여덟 바퀴 굴렀나요?”

이에 아버지께서는 손을 모으고 하늘을 쳐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나는 한 바퀴도 안 굴렀다.”

아들은 큰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사고가 전혀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사고가 난 것이 감사할 일일까요? 아니면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감사할 일일까요? 당연히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감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자신에게 많은 이득이 있을 때에만 감사를 드리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불만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 중에서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당신 자신보다는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하시지요.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기를 바라는 기도.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받아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미리 알고 계셨지요. 따라서 당신 자신에 대해 더 많이 기도할 만도 한데, 그보다는 우리들을 위한 기도에 더 집중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의탁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완전히 일치된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나를 위한 기도보다는 남을 위한 기도를 우리 역시 바쳐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된 삶을 살 수가 있고, 그래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으로 흐르지 말고 중용을 지침으로 삼아라.(키케로)



행복은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중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아주 흔한 오해이다.

이러한 오해는 직접적으로 우리가 늘 맞부딪치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낳거나, 끊임없이 인정과 이해를 받고자 하는 쓸데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드다는 점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꿈꾸는 이해에 대한 욕망은 해소가 불가능한 것이다.

행복이란 집착이나 욕망에서 나오지 않는다. 만약 행복이 집착과 욕망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행복의 진실은 혼란스러움에 있지 않고 조화로움 속에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없고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두 가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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