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 Ju Mun-mo, a Chinese missionary and the first Catholic priest ever invited into Korea, celebrates the Easter Mass.

한편 구베아 주교는
1789년 조선인 교우들로부터 조선교회가 형성되어
신앙이 실천되고 있음을 보고 받았다.
그리고 당시 조선교회에서는 교회법의 규정에도 없는 가성직제도를 시행하거나,
당시 교회에서 금지했던 조상제사를 인정하는 등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염려했다.
이 조선교회를 방치할 경우 새로운 이교(異敎)가 생겨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조선교우들의 요청대로 선교사를 보내서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하도록 배려했다.
여기에서 주문모 신부가 조선의 선교사로 발탁되었다.
조선의 선교사로 발탁되었다.
주문모 신부는 1794년 12월 23일 조선인 지황, 윤유일 등의 안내를 받아
압록강을 건너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
그는 이듬해 1월초에 서울에 도착한 후 북부 민가에 숨어
포교하다가 신분이 노출되었다.
그를 보호하려던 지황(池璜, 1766-1795), 윤유일(尹有一, 1760-1795),
최인길(崔仁吉, 1764-1795) 등 신자들은 포도청에 체포되어 죽음을 당했다.
그 이후 주문모 신부는 6년간이나 숨어 지냈다.
물론 그는 지방의 신앙공동체를 순방하며 피신하기도 했지만
그의 주된 은신처는 강완숙의 집이었다.
1801년 3월 신유박해가 일어나가 그는 한 때 몸을 피했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알고서
의금부에 자수했고,
신문을 받았다. 그는 1801년 5우러 31일 새남터에서 49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그를 보호해 주었던 강완숙도 1801년 7월 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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