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 Jung-cheol and Yi Su-ni, a Virgin Couple
Although married formally due to unevadable social tradition, they chose the monachism by living like a blood brother and sister.
Although married formally due to unevadable social tradition, they chose the monachism by living like a blood brother and sister.
그림설명:
어느 초가을날 유중철(柳重喆, 1779-1901)과 이순이(李順伊, 1782-1801)는
전주에 있던 유중철(요한)의 집에서 초례청을 열고 부부의 가약을 맺었다.
연지곤지를 한 신부 차림의 이순이(루갈다)는
서로 동정을 서약하는 예물로 명주에 쓴 서약서를 낭군에게 드리고 있다.
전통예법에서 첫날밤 부부는 과반에 놓인 술잔으로 합환주를 나눈다.
그러나 이 동정부부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다지기 위해서 소반에 가시관을 놓아두고 있다.)
신부 이순이는 녹의 홍상을 입고 연지 곤지에 족두리를 썼는데,
이는 첫 날밤이라는 뜻이다.
빨마가지 밑에는 명주천에 쓴 서약서가 들어 있다.
신방에 치장한 원앙 한 쌍과 은가락지는 변치 말자는 부부애를,
장도는 서로의 절개를 상징한다.
이 모든 것들은 두 사람 앞에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굳굳이 이겨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역사적 배경:
이순이는 1782년 서울에서 아버지 이윤하(李潤夏, 1737-1793)와
권철신의 동생인 어머니 권씨(權氏) 사이의 2남 1녀 가운데 장녀로 태어났다.
그는 14세 때 주문모 신부에게서 첫 영성체를 했다.
이때 그는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했지만,
당시 조선 풍습에서는 여성이 혼자서 동정생활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주문모 신부는 역시 동정생활을 하고자 하던 유중철(柳重喆)과
형식적 혼인을 주선했다. 유중철은 유항검(柳恒儉)의 장남이었다.
유항검은 이종사촌이었던 윤지충을 통해서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고,
권일신에게서 교리를 본격적으로 수학했다.
전주의 거부였던 그는 전라도 지역의 선교에 크게 기여했고
1801년 10월 24일 전주에서 순교했다.
앞날의 순교자 유항검은 자신의 아들 유중철에게 천주교 신앙을 올바로 가르쳤다.
지봉 이수광(李 光)의 후예로서 성호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수학했던 이윤하는
자신의 딸 이순이를 멋지게 가르쳤다.
두 젊은이들은 당시 사회의 일반적 관행에 맞서서
교회의 가르침을 가장 성실히 실천하기 위해서 동정생활을 서약했다.
그들이 동정부부로 남았던 것은 개인적 신앙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이는 동시에 유교의 가족주의적 전통을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질서로 바꾸어 보려던 치열한 노력의 표현이기도 했다.

출처 : 103위 한국순교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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