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1월 5일 주님 공현 후 월요일

도구 Ludovicus 2009. 1. 5. 08:58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월 5일 주님 공현 후 월요일

제1독서 요한 1서 3,22 ─ 4,6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복음 마태오 4,12-17.23-25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어떤 티벳 스님께서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신들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겨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도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보다 우리들은 더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예전보다 잘 먹고 잘 입고 또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만 갑니다.

행복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 또 믿으려 하면서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강조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이 꼭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이러한 예로 한 번 들어볼까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물은 어떤 모양인가요? 물이 둥근 접시에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의 모양을 둥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이 네모난 접시에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의 모양은 네모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역시 아닙니다. 물이라는 것은 어떤 모양에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그 모양도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꼭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다고 하면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을 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래서 더 많은 재산과 명예만을 추구하게 되고, 행복의 길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재산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일까요? 아닙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논리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손길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부유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닌, 온갖 병으로 인해서 고통과 시련 속에 있는 사람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이들을 만나셨고,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따뜻한 사랑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영국속담)



마지막 승리자는 누구인가

아프리카의 어느 늪지대가 오랜 가뭄 때문에 메말라 가고 있었다. 이 늪에서 살고 있던 악어들은 생존이 힘들어지자 동족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란 비정한 자연의 법칙이 생생하게 연출되었던 것이다.

이 무렵 덩치는 작지만 용감한 악어 한 마리가 늪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려고 결심했다. 타들어가는 가문이 계속되지 늪의 물은 거의 다 말랐고, 힘센 악어가 약한 놈들을 거의 다 잡아먹어 남은 악어들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늪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악어는 한 마리도 없었다. 낯선 곳으로 가는 것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늪이 그래도 안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늪이 완전히 육지처럼 되었을 때, 이 늪에 살았던 악어 떼 가운데 여전히 살아 있는 놈은 바로 늪을 떠났던 작은 악어뿐이었다.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이 악어는 새로운 호수를 찾았던 것이다. 자연에 적응하는 생물체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강자만이 생존하는 것은 아니다. 떠날 때를 알았기 때문에 잡아먹힐 운명에 처했던 약한 악어는 살아남은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운명이 바뀌어 적자생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악어는 증명한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강자가 반드시 결승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사람이야말로 환경에 더 잘 적응하여 끝까지 생존한다. 중요한 사실은 꿈을 잃지 말고 한 곳에서 자아실현이 어려우면 재빨리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발을 붙이고 있는 곳에만 집착하지 않고 낯선 다른 곳에서라도 꿈을 찾는다면 당신은 더 넓은 세상을 자신의 몫으로 만들 수 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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