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선교사 사도 바오로,
7가지 선교 이야기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도 바오로의 탄생 2천 년을 맞아
2008년 6월 28일부터 2009년 6월 29일까지 1년간을
성 바오로에게 바치는 특별 성년, 곧 ‘바오로의 해’로 선포하였다.
이번에는 이방인들의 사도로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한
사도 바오로의 삶과 신앙 속에 펼쳐지는 선교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1. 선교의 조건인 회개
바오로는 유다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하느님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철저히 지키며 성장한다.
그가 28살 때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자,
놀란 바오로는 땅에 엎어지며,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는 앞을 못 보게 된다.
그러나 주님의 분부대로 하나니아스에게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눈을 뜬다.
이 사건은 박해자 바오로가 죽고 선교사 바오로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땅에 엎어짐은 ‘말에서 떨어지는지는’ 모습을
연상케 하여 위에서 밑으로 내려옴을 상징한다.
바오로는 무조건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는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하느님 은총의 무상성’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된다.
그가 엎어지면서 닿은 땅은 겸손의 상징이다. 겸손한
자만이 하느님이 무상으로 주시는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는 먼저 회개해야 한다.
눈이 멀었다가 다시 눈을 뜬것은 예수님처럼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바오로처럼 “그리스도의 종” 이 되어야 하고,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하며 삶과 죽음을 그분께 온전히 바치는 존재이어야 한다.
2. 전례와 기도에 근거한 선교
바오로는 늘 기도와 단식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한다. 그는 공동체 전례에 참여하고,
티로 에서는 공동체가 바오로와 함께 바닷가에서 기도한다.
기도와 전례가 없으면 선교 사명을 완전히 수행할 수 없다.
기도는 선교사명을 북돋아준다.
자동차를 비유해 보자. 차에 연료가 떨어지면 어디로 가는가?
당연히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다시 넣어야 한다.
선교사도 하느님 말씀을 전하다보면 지치고 힘이 빠진다.
자동차가 주유소에서 연료를 보충하듯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선교의 에너지를 받아야 한다.
3. 성령의 활동에 내맡김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선교 여행 중에
성령께서 항상 함께 활동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바오로는 이런 성령의 활동을 자주 언급한다.
성령은 임무를 맡기고, 선교사들을 파견하며, 말을 건네신다.
여행길을 인도하고,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꿈을 통하여 확실한 길을 알려주신다.
또한 바오로에게 용기를 주신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게 사랑과 인내,
지혜와 용기, 사명과 방법을 일러주신다. 이러한 성령을
체험하는 사람은 늘 성령 안에 머물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어떠한 박해와 고통이 있다 해도 그것을 이겨낼 힘을 주신다.
성령은 우리의 위로자이시며 보호자이시다.
4. 복음을 선포하는 노동자
바오로는 선교사뿐만 아니라 노동자이기도 하다.
선교 여행을 하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교회 공동체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일을 해서 생계비를
마련한다. 아마도 과거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에서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천을 짜는 일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오로는 복음을 선포하지 않을 때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생계비를 벌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1테살 2,9; 2 테살 3,8 참조)
바오로는 말 그대로 복음을 선포하는 노동자이다.
바오로는 노동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생활과 실천으로 몸소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그의 선교 활동 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신앙인은 직업을 가지고도
하느님 말씀을 얼마든지 전할 수 있다.
노동과 선교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노동의 현장에서 누구나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 평화와 용서의
증거를 보여줄 수 있음을 바오로 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5.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기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이는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당대 상황과 문화라는 시대적 징표를 이해할 때
동시에 사람들에게 비로소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바오로 시대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떠돌이 철학자와 설교가들이 제국의 길거리에 넘쳐나고
동방에서 온 여러 종교가 도시를 가득 메웠다. 특히 팽배해 있던
그리스 문화는 모든 백성의 갈망을 채워줄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살 길과 몸 바칠 곳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오로는 당시의 사상과 문화를 십분 활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예를 들어, 아테네 아레오파고스에서
바오로는 그 지역 시민들이 믿는 “알지 못하는 신”을 소재로
그 신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려주며 선교하였다.
6. 피할 수 없는 갈등과 성숙
바오로의 선교는 당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유다교에서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나타나자 그들의 미움을 사고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또한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켜온 바오로는
예루살렘 교회와 갈등을 체험한다.
교회 일치를 위한 제1차 공의회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통해 이방인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지 않아도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결정을 현실화 시키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바오로는 로마제국과도 부딪친다.
직접적으로 로마에 맞선 적은 없지만 궁극적으로 바오로의 선교와
설교는 복음의 이름으로 새로운 방식의 사회생활을 제안했다는
점 때문에 기존체제인 로마제국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그 새로운 사회는 유다인도 그리스도인도 없고,
주인도 종도 자유인의 구별이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다.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그리스도인은
불의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체제로 고발할 수밖에 없다.
바오로는 회개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숱한 박해를 받고,
고발당하여 법정에 서며, 여러 번 감옥에 투옥된다.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지혜를 체험하면서
더욱 완전한 선교사로 성숙해간다.
7. 복음의 토착화
바오로가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들을 보면서
각 공동체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오로는 일종의 ‘복음의 토착화’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옥중서간에서는 복음을 그리스 문화와 접목하고,
로마 신자들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복음을 유다교와 결합시키며,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2개의 편지에서는 복음을
대도시의 변두리 공동체 생활과 연결하여 전한다.
오늘날의 선교도 복음이 지역 문화 안에서 육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선교사는 지역 문화를 잘 이해하고,
그 지방 특유의 풍속과 관습, 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활용하여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동시에 선교는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 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언론학 박사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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