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né Descartes (1596–1650) Philosophy Portal "Cogito, ergo sum" (Latin: "I think, therefore I am") or Dubito, ergo cogito, ergo sum (Latin: "I doubt, therefore I think, therefore I am") is a philosophical statement used by René Descartes, which became a foundational element of Western philosophy.
Descartes's original statement was "Cogito ergo sum;" Descartes wrote in Latin because it was the language of science in Europe. It is, however, often translated into his native French as "Je pense donc je suis." The phrase occurs in his Discourse on Method (1637). (See Principles of Philosophy, Part 1, article 7: "Ac proinde hæc cognitio, ego cogito, ergo sum, est omnium prima & certissima, quæ cuilibet ordine philosophanti occurrat.")
Although the idea expressed in Cogito ergo sum is widely attributed to Descartes, many predecessors offer similar arguments — particularly St. Augustine of Hippo in De Civitate Dei: "Si […] fallor, sum" ("If I am mistaken, I am") (book XI, 26), who also anticipates modern refutations of the concept. Another predecessor was Avicenna's "Floating Man" thought experiment on human self-awareness and self-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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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사상과 기독교 교리를 종합해서 중세 철학의 기초를 세웠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완벽한 세상이 있으며 현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데아를 신으로 바꿔 플라톤의 철학을 따라 기독교 교리를 전개했다. 그러므로 중세는 플라톤적 철학이 중심을 이룬다. (※굳이 구분하자면 전기 중세에 해당하며 후기 중세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바탕을 이룬 스콜라 철학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식의 목표는 신과 영혼이었으며 이성의 출발점은 '계시진리'였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이해하려면 믿으라' 였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믿기 위해서 이해하라') 당시는 기독교 지배가 확립되지 않은 시기라서 숱한 회의론이 있었으며 이 회의론은 기독교 신앙과 이념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회의론자들은 감각으로 주어진 것(the given)들은 믿을 수 없으며 불변의 진리도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이성의 사고를 불신한 것인데 이성의 믿음으로 전개되는 사고의 추리까지 부정했다. 이러한 회의론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확실한 진리는 없다는 논리로 연결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론자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찾아냈다. 회의론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의심하는 주체인 '내'가 없다면 의심자체는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심하려면 '내'가 존재해서 사유해야 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만큼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라서 철학의 제1명제라고 했다. 더 나아가 진리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것(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사람이 긍정하는 도덕적 지혜로 표현했다)이 라고 했다.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어야 하므로 인간을 초월한 어떤 근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신이었다. 즉 확실한 지식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능력이므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다시말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신의 존재를 확증하고 증명하는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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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철학은 과학처럼 확실한 지식에서 철학이 출발해야 한다는 관점이었다.
그 어떤 의심과 반론도 견딜 수 있어야 했으므로 자신이 스스로 회의론자가 되었다. 즉 의심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론을 반박하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란 자아를 정립했다면 데카르트는 확실한 지식 (누가 그 지식을 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나'를 인식했다. 그래서 '나'라는 자아가 자신의 능력으로 확실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과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능력이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 (본유관념innate ideas이라고하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정신에 내재해 있다고 하는 관념) 을 전제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나'는 생각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확실함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나' 혼자만으로도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때부터 '나'는 신을 벗어난 독립된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시조하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 부연 설명하자면 주체는 확실한 지식에 이르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
주체는 타자를 인식할 때 가능하므로 인간은 자연세계와 구분되는 또하나의 존재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주체가 타자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부각되었다. 만약에 대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없다면(진리에 도달할 능력이 없다면) '나'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근대철학은 진리추구가 목표였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모든 사물에 공통적으로 '연장'과 '사유'라는 존재가 있다. 연장은 어떤 공간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존재)이며 사유는 생각하는 성질이다. 사유는 공간을 필요치 않아서 연장과 구분이 가능하며 정신의 실체라고도 한다. (이것을 이원론)인간의 정신은 바로 연장과 사유의 두 실체가 결합되어서 이루어졌지만 사유가 연장보다 우선한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나'는 사유하는 '나'이며 물질보다 정신을 강조한다고 해서 관념론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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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철학에서 정신(주체, 사유)과 대상(연장, 물질)은 별개이므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가정했다.
첫째, 이성의 능력은 신이 준 본유관념이라서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을 인식한다. (※이성의 절대성을 위해서 신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중세철학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신앙적 교리를 확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은 이성을 타고난다'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툴째, 과학의 힘을 빌리면 대상을 증명할 수 있으므로 객관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은 가능하다. (※데카르트는 어떤 지식이든지 확실하고 완전하다면 수학적 형태로 환원된다는 주장을 했다) 셋째, 이성의 능력을 절대화시켜 정념을 통제하면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는 정념에 약하므로 끊임없이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의미에서 윤리학적 계몽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대 철학은 신에게서 인간을 독립시켰지만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어지는 대상을 구분해서 양자 일치하는 것을 진리라고 했다. 그런데 일치 여부를 확인해줄 제3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은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란 존재는 무엇인지(존재론), 인간의 인식능력은 얼마나 되는지(인식론), 신에게서 해방된 인간의 참된 삶은 무엇인지(가치론, 도덕론, 윤리학)를 고민하는 분파가 생겨났다. 그렇지만 그 중심은 '나'를 알아가는 인식론이었다.
근대철학은 진리탐구를 위해서 과학에 의존했는데 과학은 그 현상의 옳고 그름을 증명하지 않고 단지 보여줄 뿐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개개인의 '나'는 이성적 능력이 있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리라서 진리는 주관적'이라는 모순에 빠졌다. 그래서 그것을 증명해줄 제3자를 필요로 했고 다시 신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사유의 방편에서 지각되는 '나'가 틀리게 전제 되었지만 결국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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