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기둥 십자가
두 기둥 십자가’는 스코틀랜드성서공회(Scottish Bible Society)의 십자가 상징이다. ‘SCOTTISH’란 단어 가운데 2개 ‘T’자를 이용해 두 기둥 십자가를 세웠다. 굵은 두 기둥 중앙에 십자가가 걸려 있다.
1809년에 설립된 스코틀랜드성서공회는 ‘한글성서’를 최초로 번역,간행한 곳답게 ‘세계를 위한 말씀’을 모토로 삼고 있다. 첫 한글성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는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일본지부를 통해 1883년에 부산으로 들어왔는데 이는 한국 땅을 밟은 첫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보다 1년이나 앞섰다.
존 로스(John Ross·1842∼1915) 목사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로서 1874년부터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지대인 만주 고려문에서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의주 청년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서상륜의 도움으로 1882년 3월24일 최초의 한글성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문광서원·중국 선양·초판 3000부)를 발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1887년에는 신약성경 27권을 모두 번역한 ‘예수셩교젼셔’를 출판했다.
한국 개신교의 특징은 선교사보다 한글 성서가 더 일찍 이 땅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말씀의 씨앗이 먼저 뿌려진 것이다. 1895년에 설립한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는 현재 대한성서공회의 뿌리가 됐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포도나무 십자가
포도나무 십자가’는 포도 산지로 유명한 라인강의 지류인 모젤강 마인강 유역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농부들의 십자가이다. 헬라어로 ‘그리스도’의 머리글자 둘(X+P)을 변형한 십자가에 포도나무 덩굴을 얹었다.
땅을 근본으로 삼아 살아가는 정직한 농부들에게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미 4:4)는 말씀은 얼마나 넉넉한 위로인가?
창세기에 따르면 홍수가 끝난 뒤 노아는 처음으로 포도 농사를 지었다(창 9:20). 예로부터 포도나무는 성숙한 열매와 향기로운 음료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물론 뜨거운 여름 내내 시고 떫은 맛을 제 몸속에서 우려내 단물로 바꾸는 신고의 과정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성경은 포도주 감정사와 같이 포도나무를 통해 삶의 향기와 경제정의를 측정하며 포도주의 맛으로 사회적 상태를 진단해 왔다(사 5:10,암 5:11,겔 17:8).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사 1:22).
포도나무에 담긴 꿈과 희망은 결코 농부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바룩의 묵시록은 “포도나무마다 1000송이의 포도를 맺을 것이며,각 송이에는 1000개씩의 포도알이 달릴 것이며,각 포도알로 445리터의 포도주를 만들 수 있게 된다”(29:5)고 예언한다. 무엇보다 큰 힘은 하나님께서 ‘농부’ 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요 15:1)
노란띠 십자가
독일 반호프 선교회(Bahnhofsmission)의 심벌이다. 독일 열차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란띠 십자가’는 친절한 봉사자의 모습이다. 십자가의 노란띠는 불법을 단속하고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식의 권위가 아닌,긴급한 도움에 대한 겸손한 봉사와 대가 없이 나누려는 선교 의지이다.
반호프 선교회는 기차역에서 선교와 봉사를 한다. 철도 여행객은 물론 기차역 주변의 노숙인에 이르기까지 관심과 경계의 폭이 넓다.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길 안내와 정보는 물론 휴식,알선 등 다양한 업무까지 제공하고 있다.
일찍이 1894년에 설립한 반호프 선교회는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동행하시는 하나님처럼 선교의 현장을 지켜왔다. 지난 100여년 동안 반호프 선교회의 중심 모토는 ‘열차에서 인권을’이었다. 열차가 실어나르는 것은 승객이나 화물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호프 선교회는 개신교회(Diakonie)와 가톨릭교회(Caritas)가 공동의 선교를 수행하는 현장이다. 특히 세대 소속 종교 국적 등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랑의 자원을 분배한다. 이들에게 철도는 복음이다. 열차의 궤도가 평행선인 것처럼 인간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한결같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나라는 중앙역처럼 모든 인간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꽃무늬 십자가
‘꽃무늬 십자가’는 뮌헨에 있는 개신교 상담소의 십자가 심벌이다. 개신교 상담소는 특히 부부,부모와 자녀,청소년 등 가족을 위한 심리상담(Psychologische Beratung)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다.
꽃무늬 물결로 표현한 십자가 심벌은 심리치료 과정을 표현한다. 즉 인격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이 박제화된 자아세계를 발견하고 고유한 아름다움과 향기를 회복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꽃무늬 심벌은 자기 안에 가두어둔 사랑의 질서와 자기 밖과 담을 쌓은 관계에 대한 복원을 상징화했다. 행복한 인간관계는 에덴동산의 뜰에 피어난 크고 작은 꽃무리처럼 아름답다.
꽃무늬 십자가는 커다란 꽃잎속에서 활짝 피어난 상태와 점점 퍼져나가는 움직임을 함께 담았다. 이것은 존재 세계의 원형,성스러운 중심,우주적 통합,하늘로 통하는 길을 표현하고 있다. 꽃무늬 십자가는 더욱 생기로 가득하다. 중심이 주변을 향해 박동치듯 번지고 주변 역시 중심과 어울려 같은 흐름으로 물결 친다.
생명력을 상실한 나무토막인 십자가가 거듭난 삶을 뜻하는 구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은 신비 중의 신비이다. 비록 한순간에 시들어버릴 꽃잎에 불과하지만 싹 트고,꽃 피우며,잎을 떨구고,씨앗으로 남는 과정은 우주의 중심과 생명의 절정을 낱낱이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살 때 인생은 풍성한 생명의 옷을 입는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창 40:10)
지구본 십자가
지구본 십자가’는 라이헬스하임에 있는 청년과 사회를 위한 연구소(JACC)의 심벌이다. 근대 교육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코메니우스(1592∼1670)의 이름을 내건 이 연구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 위에서 지구가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해 고민하고 다음 세대인 젊은이들을 희망의 주역으로 일깨우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체코 출신으로 보헤미안 형제단 목사이다.
지구본 십자가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을 지구본 안에 가두어둔 모습이다. 실물처럼 옮겨놓은 고전적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상’(Kruzifixus)과 5개의 선으로 대강 그려놓은 지구본은 잘 어울리지 않는 낯섦으로 가득하다. 부조화라는 메시지 속에 담긴 내용은 우리 시대의 고민이기도 하다.
지구본은 하나의 마을 공동체이다. 그러나 지구본은 자연과 인간,곧 생명의 공감을 느끼기보다 쇠창살로 가두어둔 폐쇄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다름 아닌 문제 상황을 상징하는 창살을 끊어내고 새로운 탈출을 모색해야 할 현실을 의미하고 있다. 이 안에서 일어나는 숱한 분쟁과 갈등,대립과 차이는 매우 공격적이어서 모두에게 큰 위협이 된다.
민족과 종교 뿐 아니라 기성과 청년 세대의 간격,그리고 역사와 시사의 틈새에서 쉼 없이 제기돼온 이러한 도전적인 문제들은 지구적 문제에 대한 근시안적 해결책 대신 희망의 원근감각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
빨간 십자가
빨강 리본 십자가’는 아프리카 나미비아 루터교회의 에이즈(AIDS) 퇴치 프로그램의 심벌이다. 십자가 앞을 날아가는 비둘기가 빨강 리본을 물고 있다. 비둘기가 입에 문 리본은 마치 비둘기가 노아에게 물어다준 푸른 올리브 잎을 연상시킨다.
신체 면역 기능이 떨어져 각종 병원체에 무방비 상태에 이르는 질병인 에이즈는 현대판 흑사병이다. 사하라 사막 남쪽 아프리카에만 무려 2800만명의 감염자가 있다.
유엔 에이즈 전담기구인 에이즈퇴치계획(UNAIDS)은 2020년까지 20년 동안 에이즈 사망자가 모두 680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는 에이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도시지역 임신부의 감염 비율이 급증해 갓난아기들은 출생과 함께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
빨강 리본은 UNAIDS가 지정한 로고로 에이즈에 대한 세계적 심벌이다. 빨강 리본은 에이즈로 인해 친구나 가족,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상징적인 지지를 표시한다. 바로 희망의 심벌인 것이다.
빨강 리본을 문 비둘기는 검은 십자가 앞을 날고 있다. 검은 십자가는 흰 비둘기와 대비돼 아프리카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 16:30)
백장미 십자가
백장미 십자가’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문장(Luthers Wappen)이다. 전통적인 백장미 십자가는 한가운데 십자가는 검은 색,심장은 빨간 색,장미는 흰 색,장미의 테두리는 금색,그리고 바탕은 푸른 색으로 돼 있다.
일찍이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가 모든 것을 시험한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교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십자가뿐이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정체성을 꾸준히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루터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 관행에 반발해 비텐베르크성 교회문에 ‘95개조의 논제’를 내걸고 종교개혁에 불을 댕겼다. 신·구교의 분열로 이어진 이 논쟁을 통해 개신교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가톨릭은 ‘믿음과 함께 선행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9년 10월31일 종교개혁 기념일에 교황청 일치위원회 위원장인 에드워드 카시디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 크리스찬 크라우저 감독은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서 면죄와 구원에 대한 논쟁을 종식했다. 양측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연대십자가
‘연대 십자가’는 만남과 협력을 상징한다.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관계 맺게 하고 성숙한 연대를 가능케 하며 연합시키는 접착제이다. 사랑의 우산 또는 집의 기둥처럼 표현된 연대 십자가는 진행중인 독일 교회와 탄자니아 교회의 결연관계를 상징한다.
십자가 아래에서 두 피부색이 서로 손을 잡았다. 그동안 독일교회의 선교정책은 바로 형제 자매 관계를 넓혀가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서로 먼 곳이지만 십자가 아래에서 가까이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계의 언어는 구체적으로 ‘혼인한 남편과 아내’(엡 5:22∼33) ‘머리와 몸’(고전 12:12∼27) ‘포도나무와 가지’(요 15:1∼17) 그리고 ‘모퉁이돌과 다른 돌들이 서로 연결하여 이루어진 성전’(엡 2:19∼22)으로 표현된다. 바로 교회는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그리스도”(본회퍼)이며 낱낱이 연대한 집합적 인격체인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해 가능하다.
독일교회는 이러한 관계의 언어를 현대사에서 실천했다. 40년이 넘는 분단기간에 동독교회(BEK)와 서독교회(EKD)는 서로 결연관계를 갖고 정기적으로 상호 방문했다. 같은 성경일과를 선택했고 같은 찬송가를 불렀으며 같은 전통에 따른 교회력을 지켰다. 그리고 1991년 7월1일 재통합하기에 이른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5)
어깨동무 십자가
‘어깨동무 십자가’는 유럽의 희망에 대한 교회적 몸짓을 표현한 것이다. 출발은 블록을 허물어뜨리고 경제적 지원으로 시작하지만 경계선을 넓혀 평화와 소망을 공유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는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유럽 통합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어깨동무 십자가는 동유럽 사회와 희망을 나누려는 서유럽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풍요로운 서유럽과 북유럽에 비해 유럽의 중앙과 동쪽은 여전히 가난하다. 특히 종교나 인종 등 차이와 차별은 역사적으로 폭발력 있는 화약고처럼 인식되었다. 동서 유럽이 오랫동안 서로 다른 체제 아래 살아왔으므로 서로 이해가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어깨동무한 십자가가 매우 따뜻하게 느껴진다. 파란색 십자가와 하늘색 십자가의 어깨동무는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 2개의 십자가는 종이공예나 대바구니의 결합 부분을 연상시킨다. 이는 끊임없이 연결되고 짜여나가는 십자가의 연속선을 의미한다. 파란색 십자가의 떨어진 한 귀는 어깨동무가 계속돼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2개의 십자가는 배색이 잘 어울린다. 그 푸름이 시원하고 깨끗하다. ‘동유럽을 위한 희망’ 프로젝트는 일방적인 ‘대신’이 아니라 각각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연대’하는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훨씬 산뜻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고후 8:24)
왕관 십자가
‘왕관 십자가’는 독일 개신교 사회봉사국의 상징이다. 이것은 십자가의 양 어깨 위에 왕관을 얹은 모양을 하고 있다. 또는 그 반대로 고생을 많이 한 나귀의 구부러진 등처럼 느껴진다.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 위에 서 있는 자유의 군주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라고 설명했다. 왕관 십자가는 왕이신 그리스도가 보이셨던 섬김을 따라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독일 개신교 사회봉사국의 출발점은 1849년 뷔헤른 목사가 사회봉사 활동을 위해 조직한 국내선교부부터다. 그리고 국내선교부가 1957년 새롭게 재편돼 현재 독일교회(EKD)의 대표적인 사회봉사 기관인 디아콘 운동으로 확대됐다. 봉사는 증언 친교와 함께 초대 교회 이래 세 가지 교회의 본질 가운데 하나였다. 디아콘의 직무는 하나님 앞에서,그리고 교회 속에서 세상의 위급한 일들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 개신교 사회봉사국은 독일교회가 얼마나 사회화됐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특히 ‘세계를 위한 빵’은 1959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돼오는 모금운동이다. 사회봉사국은 독일 안에서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교육 의료 인권 재난구호 등 아홉 가지 분야에 걸쳐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근래 독일교회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이웃사랑과 봉사의 규모는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팔 둘레를 넓혀나가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행 6:3)
송병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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