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멈추십시오. 사색하고 귀 기울이십시오. / 문규현 신부

도구 Ludovicus 2008. 10. 14. 06:06

 

문규현 신부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http://blog.daum.net/paulmun21/7318665

 

 

10월 12일 연중 제28주일 묵상

 

멈추십시오. 사색하고 귀 기울이십시오.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미사를 드립니다. 때론 서늘한 마당에서 떠오르는 새벽해의 황홀한 조명 속에 근사하게, 때론 비좁은 방에서 더욱 다정하게, 때론 아름다운 성당에서 장엄하게, 셋일 때도 있고 다섯일 때도 있습니다. 그 꼭두새벽 조촐한 미사라도 같이 드리겠다고 새벽길 달려오는 신자도 있습니다.


언제나 가톨릭 성가 2번을 시작성가로 부릅니다. 천주교 사제로 떠난 이 오체투지 순례길, 제 심정이 이 성가에 그대로 다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부를 때마다 늘 그냥 새롭고 좋고 감사합니다. 1절부터 4절까지 다 부릅니다. 그래야 모든 의미가 완성됩니다.


        1.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2. 저 수풀 속 산길을 홀로 가며 아름다운 새소리 들을 때

                산위에서 웅장한 경치 볼 때 냇가에서 미풍에 접할 때

        3. 주 하느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을 위해 보내주시어

                십자가에 내 죄를 대신하여 못 박히시어 돌아가셨네.

        4. 주 하느님 세상에 다시 올 때 내 기쁨 말로 다 못하겠네.

                겸손되이 주님께 경배할 때 그 크신 공덕 내가 알겠네.

        

                (후렴)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그리고 미사 때면 언제나 저희는 하루하루 묵상할 가치를 뽑는 카드놀이를 합니다. 사랑, 신뢰, 완전함, 평화, 성찰, 경청, 고귀함, 사려깊음, 정의, 관용, 배려, 친절..... 이런 것들을 묵상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다보면 순례길은 더 많은 의미와 깊이로 다가옵니다.


세상은 갈수록 스산해지건만, 죄송하게도 저희에게 이번 주는 가장 행복한 소풍 길이었던 듯합니다. 날씨가 순례길에 선 이래로 제일 고르게 좋았습니다. 사실 아직까진 한낮 햇살이 머리 벗겨지도록 뜨겁게 내리꽂힙니다만, 작물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기에 기꺼이 고마워하며 갑니다.


때론 곡물들을 햇살에 말리느라 부산한 농부들 곁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좀 더 살피며 길을 가게 되고, 수고하는 농심을 향해 절로 고마움과 존경의 절을 올리게 됩니다. 익어가는 벼들로 누렇게 황금바다로 일렁이는 들판, 그걸 잠시라도 바라보노라면 오체투지로 헉헉대던 심장도 혈관도 근육도 일순간 평온해집니다. 저것이 황금이지요. 사람들이 잊고 살고 있는 진짜 황금. 평화와 평온함, 경건함과 넉넉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생명을 살리고 생명의 뿌리가 되는 것이 진짜 금인 것입니다.


농사는 하잘 것 없이 치부하면서 곡물투기와 땅 투기에는 열중하는 사람들. 금 사는 일에는 넘치게 관심두면서 황금들판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은 잊은 지 오래인 사람들. 사람은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고 죽어가든 말든 외면하면서 부동산이나 성장이니 개발이니 하는 것들에는 갖은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하는 사람들. 성찰 없고 뿌리 없는 삶, 끝없는 욕심과 욕심으로 부풀려져 매일 매일을 불안과 근심으로 채우는 사람들. 사랑과 자비는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그저 장사에 몰두하는 사람들.... 감동도 없고 울림도 없고 생기도 없고 평온도 사라진 이 현실에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고통과 시련을 통해 타락과 교만에서 벗어나도록 성찰과 새로남의 기회를 거듭 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헤아릴 뿐. 길을 묻고 또 묻고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


금요일에는 가을비가 살살 내렸습니다. 햇살에 말리겠다고 널어놓은 곡물들이 그만 비에 젖은 걸 봤습니다. 하늘 파랗게 높으니 갑작스런 비를 미처 생각 못했을 농부 속은 많이 상했겠지요.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도 농부는 햇볕에 작물을 말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그걸 선택했을 겁니다. 또 농부는 가뭄이 들면 설사 내일 비 소식이 있다 해도 오늘 물대러 나갑니다.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삶이라는 순례길도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삶의 근본, 원초적인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외면하고 잊고 있던 가치들을 기억하고 찾고 선택해야 합니다. 이번 주일 묵상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은 과연 어떤 가치들을 담고 있는지, 또 어떤 가치들을 선택하며 살고자 하는지를 말입니다. 그것들이 정말 하느님이 선사하신 선물이 맞는지를. 허위와 위선과 탐욕은 버리고 진짜 내가 되기 위해, 허망한 유혹이나 욕심을 비우고 진정 마음에 묵직하게 간직해야 하는 가치들은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어제 토요일, 전주 천주교 순교성지 치명자산에 올랐습니다. 오체투지와 함께 많은 신부님들과 신자 여러분, 그리고 강론을 대신한 설정스님의 말씀 속에 생명평화 미사를 드렸습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곳에서의 오체투지는 아주 각별하고 각별한 감동과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땅에 엎드릴 때마다 순교자들의 영혼과 정신을 더욱 깊고 가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러난 외양은 참으로 곤궁하고 비참하였으되 신심과 영혼만은 최고조로 고양되고 행복하였을 순교자들. 삶과 신앙의 본질, 핵심과 진리를 추구하고 간직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인 순교자들. 그분들 앞에 오체투지로 인사드리고 현양할 수 있었음은 참으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고 기쁨이었습니다. 

 

가는 길 질주하는 길, 멈추십시오.

사색하고 귀 기울이십시오.

자기 마음이, 삶이, 주위 존재들이,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10월 12일 문규현 바오로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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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십시오. 사색하고 귀 기울이십시오.

 

2008년 10월 12일 (녹) 연중 제28주일


        이사야서  25,6-10ㄱ

        필리피서  4,12-14.19-20

        마태복음  22,1-14<또는 22,1-10>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들.” 사도 바오로가 지난주에 한 말씀이다. 어떤 것들이냐 하면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 등이다. 이것들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면 또한 우리의 말과 행위의 방향도 옳게 이끌어주고 고무할 것이라고 사도 바오로는 생각하였던 듯하다. 다시 말해 이 가치들을 가슴과 정신에 새기고 우리 삶 속에 실천한다면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초대와 제안에 더욱 조화롭게 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하느님 초대의 장은 뚜렷하여 우리가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가족들을 통해서, 또는 친구나 지인들을 통해서 또는 모르는 낯선 이를 통해서도 하느님의 베푸심과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또는 그들이 우리들의 베품과 손길을 기다리는 초대의 장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초대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선택권은 초대받은 이의 몫이다. 


그 무엇이 되었건 하느님의 움직임과 그분이 주시는 기회를 알아채고 선택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우리의 민감함에 달려있는 것이다. 민감한 사람이란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들 속에 있는 이들이다. 이런 가치들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한다면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갈망은 진실한 것이 되리라. 하느님의 초대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자신이 나아갈 바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리라.


하느님의 초대는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익숙한 우리 주위의 존재들 속에도 있다. 집 가까이 있는 공원이나 산은 자기 안에 와서 명상에 잠기라고 초대한다. 그곳에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고자 창조하신 아름다움과 기쁨, 색채와 같은 것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잠시 올려다본 푸른 하늘, 새의 지저귐을 듣는 순간, 또는 일출이나 일몰을 보기 위해 잠깐 짬 내본 시간 등.... 이 모든 것들은 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우리의 눈과 귀와 영혼을 돌보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초대이시다.


거룩한 신적 권능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들, 그것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다양함과 풍요를 잔치로 승화시키고 선한 것들을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음악가가 특별한 귀로 들을 수 있게 하고 미술가가 분별력 있는 눈으로 보게 하신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과 미술작품들, 문학들을 통해 미를 창조하시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이것을 축하하며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엉뚱한 것들로 마음이 부산하다. 지나치게 바쁜 일상이 우리를 하느님의 초대와 잔치, 마음에 간직해야할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자신의 욕망을 하느님의 뜻보다 우위에 두는 사람들은 너무도 쉽고 빠르게 하느님의 초대를 거부하거나 무시할 명분을 들이밀곤 한다. 부를 축적하느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잡다한 관심사들이나 근심들 때문에, 오직 일 때문에, 그리고 우리 주위에 매달고 다니는 각종 삶의 무게 때문에 그러하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산만하게 한다. 그 결과 하느님의 초대와 하느님이 주시는 기회를 잘 분별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말씀과 전례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신적인 영역을 규칙적이고 정기적으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 매 주일 전례에 참석하여 숱한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잠시 숨 돌리라. 그리하여 그냥 단순하게 하느님 현존 속에 잠겨보라. 침잠하고 맛보고 느끼라.


그러나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우리가 이 선물을 거부하는가. 우리의 거부와 우리의 변명들이 하느님 제안과 초대에 둔해지지 않도록, 귀 기울이고 듣자. 하느님의 잔치,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펼쳐진 잔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자.


 

 

 

 

출처 : 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평생사랑)을 찾아서
글쓴이 : 생명평화마중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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