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님 블로그에서 옮겼습니다. http://blog.daum.net/paulmun21/7154878
10월 5일 연중 제27주일 묵상
힘내세요
길 위에 선 지 꼬박 한 달 되었습니다. 그리고 번잡해진 길목 전주에 와서 여러분을 뵙습니다. 지리산 노고단서 여기까지 거의 100여 킬로미터라 합니다. 올해 목적지 중학단이 있는 계룡산까지는 이제 절반 밖에 안 남았습니다. 삼보일배는 산보였구나 했을 정도로 말할 나위 없이 힘들더니 이 길을 한 달이나 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을 입에 달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보름만 넘기면 돼. 그럼 살 수 있어 살 수 있어.” 하고 마치 보름 동안만 길을 가기로 한 사람처럼 온몸으로 버티던 수경스님도 그 고비를 넘기고 지금껏 ‘살아’있습니다. 물론 아픈 무릎이야 늘 아픔거리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순례식구도 한 명 더 늘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님. 하느님의 이끄심, 부처님의 도우심, 많은 이들의 기도가 아니라면 이 길을 어찌 왔겠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래서 뭐 변하는 게 있는 것 같으냐고. 세상이 아무런 반향을 안 보이면 어쩌느냐고. 걱정과 안타까움인 게지요. 내 얼굴이 땅 색깔하고 더욱 같아진 것, 번잡하던 내 세속 짐을 다 내려놓은 듯 가볍고 평화로우니 그게 변한 거라고 답합니다.
저희가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세상이 반응하지 않고 무슨 변화도 없다면, 그건 그대로 또 무슨 의미가 있겠지요. 세상을 위해 할 수 있고 세상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어서 떠나온 이 비천하고 바보스런 길에서, 세상의 반응을 탐하고 변화를 타산한다면 그건 천주교 용어로 ‘사탄의 유혹’ 아닐까요.
기어가는 자벌레 속도보다 더 느리고 느린 게 어쩌면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이고 세상의 변화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늘 얘기해왔듯이 선하고 착한 이들이, 땀 흘려 수고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생명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힘내는 것입니다. 외롭고 힘들 때,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여러분을 위로하고픈 어떤 이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힘을 내고 희망을 놓지 않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지나온 길은 산업도로마냥 유별나게 큰 트럭들이 많이 다녔습니다. 그 거대한 몸집들이 빠른 속력으로 휙휙 달리면 바람과 먼지에 아스팔트길조차 흔들립니다. 옆으로 기어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 아예 무시하고 앞으로만 달리는 게, 이 시대 속도와 욕망의 자화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허나 한편으론 그렇게 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절박하고 고단한 그이들의 삶도 생각하게 됩니다. 생존이 생명이고, 손에 쥐는 얼마간의 돈이 일상의 평화일 수 있는 이들의 처지를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얼마 전 제 블로그에 ‘주님의 은총’이란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치매인 어머니 대소변을 가려야 하고 수험생 아들딸 뒷바라지 그리고 조금만 힘들어도 입안이 헐어버리는 몸 저 입니다. 인천에 살고 있고 가까운 거리 촛불에 종종 다녀오고 다인아빠 활동에 동참합니다. 후손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태며 기도합니다. 당신들의 실천적 기도가 나 같은 무지랭이 아줌마에게 너무나도 큰 힘이 됩니다. 인천 근교에 오시면 반드시 동참 하겠습니다.’
이 글 남기신 주님의 은총님 고맙습니다. 참 어려운 조건 속에서 사랑과 생명을 위해 무한히 힘내주어 고맙습니다. 그리하여 저희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더러 “힘내라”고 격려합니다. 그 마음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는 말합니다. 여러분 힘내세요. 저희는 안 그래도 있는 힘 다 내고 있습니다. 힘내야 할 사람들은 여러분입니다. “힘내세요.” 보다는 “힘내겠습니다.” 하는 말을 들을 때, 쓰러질듯 힘겹던 저희 몸도 벌떡 일어서는 용기로 충만해집니다.
오늘 성경묵상은 하느님의 포도밭과 그 포도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일궈낼 일꾼들에 관한 것입니다. 저희의 기도가 세상의 단 한 분에게라도 힘이 된다면, 그리하여 하느님의 포도밭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힘을 계속 길어 올릴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제가 바라는 변화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포도밭을 맡기시며 잘 가꾸고 좋은 결실을 일궈내라 청하십니다. 생명력과 풍성함이 넘치고,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나눔과 기쁨으로 가득한 포도밭을 만들 것을 청하십니다. 당연히 우리를 믿으시는 게지요.
자신이 가꾸고 돌봐야 할 포도밭은 어떤 것입니까? 포도밭을 맡은 일꾼의 마음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포도나무들은 어찌 될까요? 과욕과 탐욕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무관심과 게으름으로 일관하면 또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까요? 하느님의 기대를 거슬러 제 욕심과 제 시선으로 포도밭을 차지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안 그래도 요새 포도 맛이 한창 좋더군요.
맛난 포도 드시면서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더불어 생각합시다.
기도, 기도, 기도 합시다. 하느님의 훌륭한 포도밭 일꾼이 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10월 5일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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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맡기신 포도밭
2008년 10월 5일 일요일 연중 제27주일
이사야서 5,1-7
필리피서 4,6-9
마태복음 21,33-43
http://blog.daum.net/paulmun21/715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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