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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난한 신자들 속에서 울고 웃고

도구 Ludovicus 2008. 9. 10. 13:41

 

최종수 신부의 신바람 교회  

 

 

가난한 신자들 속에서 울고 웃고

 

 

 입력 2008.8.2. 최종수  http://cafe.daum.net/cchereandnow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이별은 어떤 말로 위로를 해도 슬픈 구석이 있다.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사람들과의 이별은 더욱 그러하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사람들과 이별주를 나누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떠난다는 것이 결정되고 보니, 가슴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가난한 이웃의 벗 빈첸시오 회원들. 생업에 종사하며 퇴근한 밤 시간을 이용해서 일주일에 2-3번 폐품을 수집하고, 격주로 에어컨도 되지 않는 봉고차로 양로원 봉사를 가고, 매주 주일이면 폭우로 조립식 성당이 물에 잠겨 수중미사를 드렸던 성당의 신축기금과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지원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장면과 여러 잡화 장사를 다닌다.


돈, 돈, 돈. 세상은 돈과 재물에서 행복을 찾지만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까지 참행복을 가르쳐준다.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이 봉사하는 모습만 보아도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힘들 때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되어주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낮은 곳에서 가난한 이웃들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아름다운 희망을 주는 신비로운 마력이 있는가 보다. 


아껴둔 백두산 들쭉술과 양주 한 병을 들고 갔다. 그들은 일 년에 두 세 차례 폐품 수집을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를 마신다. 오늘은 모처럼 중국집에 생선회가 배달되었다. 10명 회원들 각자에게 이별주를 따랐다. ‘팔복! 팔복! 파이팅’ 건배로 시작된 송별회는 잔칫상처럼 즐거웠다.


아쉬움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 돌아왔다. 우리는 서로의 가슴에 가득했던 행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릇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치는 물과 같았다. 행복의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온 각기 다른 빛깔의 사랑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첫 소감은 사장님따라 자장면 봉사를 다니는 병태씨다.

“제가 이곳 중국집에 와서 일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가 봅니다. 광주 차표를 끊어놓고 우연히 광고지를 보고 전화를 했습니다. 차표를 물리고 이곳에 온 다음날부터 일하게 되었습니다. 새벽 5시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주일이면 자장면 봉사를 나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켜보면서 봉사하는 즐거움이 일주일을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 주일 사장님을 따라서 자장면 봉사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부님께 영세를 받지 못해 아쉽지만 꼭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요. 저희 성당이 ‘줄을 서시오’ 할 만큼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성당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다음은 빈첸시오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행복이 무언지 알았다는 막둥이의 소감이다.

“저는 팔복성당이 생긴 뒤로 너무도 행복합니다. 제가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아서 집에서만 지냈는데, 팔복성당이 생기면서부터 가난한 이들을 돕는 빈첸시오 활동을 하게 되었고 건강도 더 좋아졌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해주시는 신부님 얼굴만 봐도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폐품 수집도 하고 양로원 봉사도 하면서 제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자장면 봉사의 주인공인 울보 자매님 안나씨, 말을 시작도 못하고 한참을 울다 말문을 열었다.

“저는 15년 동안 냉담을 했습니다. 팔복성당이 분가하고 첫 미사를 드린다며 김치찌개를 준비해 달라고 왔습니다. 갑작스런 주문이라 익은 김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뚜막에 생김치를 놓고 밤새 익혔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치찌개를 했는데 신자들이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고 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일마다 자장면 봉사를 가고 격주로 양로원 봉사를 가면서부터 행복이 무언지 알게 되었습니다. 팔복동에 성당이 생기지 않았으면 지금도 성당에 나가지 않고 지금의 행복도 몰랐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아찔해 집니다. ‘엄마 우리 가족끼리 꽃구경 한 번 가요’하는 불평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합니다. 토요일 밤부터 회원들과 양파와 감자를 까고 썰고, 주일 새벽에 애기아빠가 자장 소스를 볶아요. 혼자 일하면 힘들까봐 홀에 앉아 있어요. 전날 손님이 많으면 피곤해서 앉아서 졸아요. 졸면서도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며 혼자 씩 웃기도 해요.”


 

 

다음은 부모님의 권유로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는 요한 씨 둘 째 딸 소리, 엄마를 닮아 말문을 열면서부터 울음을 삼키며 말해야 했다.

“저는 신부님께 죄송합니다. 저희 성당이 분가된다는 소식을 듣고 팔복성당에 가봤습니다. 조립식 건물 하나 덜렁 있고, 잡초만 무성한 성당을 보고 너무도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마저 흰머리가 많았어요. 저희들과 맞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과 함께 학생회를 하면서 너무 쉽게 친해졌습니다.


창세기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면서 신부님이 저희 연습실에 와서 몇 차례 술값을 주고 갈 때, ‘너희 본당은 참으로 좋겠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성전신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장면 봉사를 시작한 초창기에 저희 아빠와 엄마가 주일날 저희들과 한 번도 놀러가지 못한 것이 서운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 사람들로부터 팔복성당 자장면이 너무 맛있다는 칭찬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 같이 팔복성당만 할 수 있는 자장면 봉사라는 말을 듣게 될 때, 저희 엄마 아빠가 자랑스러웠어요.”

 

다음은 팔복성당의 해결사 빈첸시오 회장이다.

"그동안 빈첸시오 회원들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보아주신 신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빈첸시오회는 정말 많이 발전하고 활성화되었습니다. 우리 교구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우리 팔복성당 빈첸시오회처럼 열심히 활동하는 성당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지금 행복하죠. 우리가 부자 성당이 아닌 가난한 성당이기에 누릴 수 있는 은총입니다. 모두가 인자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없는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신부님 덕분입니다. 지금처럼 첫 마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활동합시다. 사랑합니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가슴에서 흘려보내는 소감은 눈물의 강으로 흘러갔다. 소감들은 파노라마처럼 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고 눈물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흘리게 했다. 소감의 시계 바늘은 나에게서 멈추었다. 몇 차례 입을 다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행복이 무언지 깨닫게 해준 삶의 스승입니다. 그동안 많은 본당에서 이별 연습을 해 왔기에 면역이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어떤 날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이슬방울들이 두 볼로 흘러내릴 때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곳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혼자 눈물을 흘린 날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가난한 신자들 때문에 눈물 흘리고, 재정도 빈약하고 함께 일할 젊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고, 때때로 힘들게 하는 일들 때문에 울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런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밤늦게까지 폐품을 수집하는 여러분들, 양로원 봉사를 하고 자장면을 파는 여러분의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빈첸시오 회원들이 있었기에 제가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행복의 뿌리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떠나야 하는 내가 아니라 보내는 사람들이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떠나는 사람보다 보내는 사람들이 더 슬펐기 때문이다. 두 볼로 흐르는 연민의 정, 입으로 파고드는 짭짤한 콧물, 화장지로 닦은 촉촉한 눈물덩이들이 상아래 쌓여있다. 가난한 신자들 속에서 웃고 울었던 날들, 사랑과 행복이 흘러넘쳤다고 고백할 수 있으리라. 눈물처럼 아름다운 기도는 없다고 했던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빈첸시오 회원들과 많은 분들이 영원히 행복하길...

 

 

최종수/전주교구 팔복성당 주임사제        

 

 

 입력 2008.8.2. 최종수  http://cafe.daum.net/cchereandnow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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