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도구 Ludovicus 2008. 8. 22. 07:41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제1독서 에제키엘 37,1-14

그 무렵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복음 마태오 22,2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먼저 오랜만에 인사를 올립니다. 저 빠다킹 신부, 지난번에 공지했던 대로 여름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8월 18일부터 21일까지 3박 4일 동안 제주도 일주 자전거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밤늦게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서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을 열며 묵상 글도 이렇게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웬만하면 새벽 묵상 글은 빠짐없이 보낼 텐데, 이번 자전거 여행은 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닌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서 묵상 글과 아침문자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공지를 했고, 또한 8월 18일 새벽 묵상 글에도 이 내용을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지 내용은 전혀 보시지 않고 ‘왜 새벽 묵상 글과 아침문자를 보내주시지 않습니까?’라는 항의성의 메일과 문자 그리고 쪽지가 많이 도착해 있더군요.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특히 아침문자 받는 분은 새벽 메일을 무조건 받아야 하기에, 분명히 아침문자가 오지 않는 이유를 새벽 카페에 들어오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러한 서운한 감정을 갖다보니 문득 제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들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 비판 역시 저의 주관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제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했던 것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옳고, 다른 사람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들. 바로 내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남에 대해서는 엄격한, 지극히 이기적인 저의 모습인 것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율법의 조항 중에서 어떤 계명을 가장 으뜸으로 생각해야 하냐는 질문인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핵심을 꼬집어서 말씀하시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사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나의 모든 생활이 이 사랑에 맞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 대한 사랑에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아닌 하느님에 그리고 내가 아닌 나의 이웃에 사랑의 초점이 맞춰 있어야 하는데, 내 자신에게만 맞춰 있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내 마음에 언제나 꼭 맞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하긴 내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에 대해서는 늘 만족스럽길 바랍니까? 이것 또한 하나의 큰 욕심일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중요한 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실천만이 바로 주님의 뜻대로 사는 모범적인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나는 이렇게 부탁했다('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적힌 글' 중에서)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신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로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로 받았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신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걸 선물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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