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연중 제19주일 - 마태오 14,22-33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인생의 풍랑 앞에서>
군사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양심의 소리에 차마 귀를 막지 못해 청춘을 차가운 콘크리트 벽 안에서 보낸 의인(義人)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무자비한 절대권력의 완강하고 높은 벽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때로 수치심에 치를 떨기도 하고, 생명의 위협도 자주 느꼈습니다.
다행히도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신앙과 낙천적 성격이라는 큰 버팀목이 그분의 흔들리는 삶을 잡아주었습니다. 담장 안에서 그분의 삶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독서와 기도생활. 기도생활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갈고닦았고, 독서를 통해 자신의 정신세계를 계속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다른 양심수들은 극심한 분노와 좌절, 억울함과 답답함으로 미칠 것만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지속적 스트레스, 영양의 불균형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중병에 걸려 죽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히려 수감생활을 통해 더욱 균형잡힌 영육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삶의 중심을 제대로 잡기만 한다면, 어떠한 뜻밖의 상황이 우리를 엄습할지라도 우리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럽고 열악한 분위기가 우리 삶을 덮칠지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을 굳건히 신뢰한다면 그 어떠한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우리는 내적 고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역풍은 일상적 일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은 나약한 속성상 언제나 흔들리고 표류하기 마련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춥고 배고픔, 상시적으로 다가오는 십자가는 기본입니다. 때로 우리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수립했던 계획들이 송두리째 물건너갈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난데없이 날아온 돌에 맞아 우리의 온 삶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도 많습니다. 단 하루도 못 보면 못 살 것 같던 그 사랑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야만 하는 거짓말같은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역풍은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할 손님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안에 굳건히 자리하실 때, 그분께서 우리 중심에 살아계실 때, 우리는 어떤 세찬 역풍 앞에서도 보란 듯이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내면 깊숙이 그리스도 그분께서 형성돼 있다면 그 어떤 세상 풍랑 앞에서도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역풍을 만난 제자들 모습은 어찌 그리 우리 모습과 빼닮았는지요? 역풍을 만난 제자들은 겁에 질려 제정신들이 아닙니다. 그 상태에서 나타나신 스승을 보고 제자들은 혼비백산한 나머지 겁에 질려 유령이라고 소리지릅니다. 스승을 본 제자들은 반가워하기보다 부들부들 떱니다. 천지의 창조주이자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과 한 배에 타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아직 자신들의 내면에 그리스도가 형성되지 않은 제자들, 아직 갈 길이 먼 제자들의 한심스럽고 미성숙한 모습입니다. 제자들 신앙 안에 아직 스승에 대한 정확한 대상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역풍을 만난 제자들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 모습 같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매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안에 주님이 항상 현존해 계신데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주님이 어디 계신가?' 하고 외칩니다. 그분께서 늘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시기에, 그 어떤 풍랑이 다가와도 안전함에도 우리는 걱정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아직 갈 길이 먼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 모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실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으십니다. 제자 공동체의 갖은 결함 앞에서도 지속적으로 인내하시며 계속 그들을 향해 손을 내미십니다. 때로 인생의 역풍을 통해 제자들을 단련시키시는 등, 제자들 신앙을 한 단계 성숙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세파에 시달려 정처없이 표류하는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꺼이 손을 내미십니다. 죽을 고생을 다하며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위로 말씀을 건네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18번/주여 당신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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