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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도구 Ludovicus 2008. 7. 16. 05:56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기 간

 553년 5월 5일 ∼ 6월 2일
 비질리우스 교황

배 경

그리스도의 단성설을 주장하는 유티케스파는 칼체돈 공의회가 테오도레투스의저서, 이바스의 편지, 테오도루스의 저작을 확실히 단죄하지 않았음을 구실로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하고 황제에 대해 삼장서를 확실히 단죄

하도록 요구하였다. 황제는 삼장서를 단죄하였으나 한편에는 아프리카의 주교들이 이를 거부하고 변호서를 집필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단 교황은 칼체돈 공의회의 권위가 의시받을 것을 염려함과 동시에 양극단을 화합시키고자 하였다. 마침내 교황과 황제는 삼장서에 대한 문제를 공의회에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과 정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령에 바탕하여 교황의 동의 없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궁전에서 개최되었다. 4주간 동안 8회의 총회가 있었다. 교황이 삼장서에 대한 의견발표의 요구의 거부로 주교들은 교황이 부재한 채로 공의회를 계속하여 주교들은 테오도루스와 테오드레투스와 이바스의 저서를 단죄하였다. 총회 사이에 교황은 삼장서에 대한 자신의 결정을 황제에게 보냈으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제 8총회에서 공의회는 삼장서를 단죄하고, 164명의 참석 주교들은 모든 결정문에 서명하였다. 희랍 및 동방교회의 주교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공의회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교황은 공의회의 결정이 칼체돈 공의회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을 승인함과 동시에 이것이 제5차 공의회임을 인정하였다.

결과 및 의의

네스토리우스파의 삼장서에 대한 이단 선고

삼장으로 알려진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시릴로의 데오도레투스 그리고 에데사의 이바스가 쓴 저술들을 정죄함.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의 신성만이 있으며, 축복받은 동정녀는 진실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함. 삼장을 정죄하는 데 있어서의 그 가혹성 때문에, 뒤늦게 교황 비질리우스의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는 곧바로 인정되지 않았다. 서방측 교회들에서는 본 공의회에 대한 반대가 처음에는 무척 강했다. 밀라노와 아퀼라 교구들은 로마와 관계를 끊었다. 이러한 관계가 밀라노에서는 6세기 말까지, 그리고 아퀼라에서는 7세기 말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본 공의회의 세계적인 성격은 보편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출처 :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글쓴이 : 오아시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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