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1 독서(이사 55,10-11)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말해줍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는 정작 하느님을 부르지 않고(이사 55,6),
멀리 계실 때에는 또 멀리 계시다고 탓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은 마른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을 돋아나게 하는 고마운 빗방울처럼 자비하신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뿌릴 씨로 비유하면서
비가 와서 기름지게 된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우고 많은 열매를 맺듯이
한 번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 말씀의 내용이 실현된다고 합니다.
오늘 제2 독서(로마 8,18-23)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자유는
지금 겪는 고난을 이겨낼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로마 8,17)고
강조한 뒤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은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신”(로마 8,29) 대로
미래에 닥칠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닥칠 영광을 위한 준비가 무엇인지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19-21절),
우리가 마치 땅에 버려진 씨앗처럼 생각되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자유를 얻도록 해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해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로봇처럼 조종하신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딸 수 있는 열매를 미리 마련해놓으시고
이 세상에 하나의 씨앗처럼 뿌려주신 것이며,
동시에 땅을 기름지게 할 빗방울까지 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의 자유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
먼저 우리는 이 땅에서 싹을 틔워야 하는 아픔을 견뎌내야 합니다.
싹을 틔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
하느님께서 싹을 틔워주시는 일까지 손수해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인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싹을 틔우는 일이
힘겹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희망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둘째(22-23),
세상이 마치 멸망의 종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21절)
온통 탄식과 고통의 바다인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몸부림이며,
세례성사의 선물인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바람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에 견준다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탄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이겼다.”(요한 16,22)고 말할 수 있으려면
세상에서 겪는 아픔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13,1-9)은
네 가지 형태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비유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계절이나 씨앗의 종류는 물론,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갈아엎었다는 말도 없이
단지 씨앗이 떨어진 네 가지 상황을 우리의 마음,
혹은 공동체에 비유 하면서 단순하게 씨를 뿌린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씨앗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이고,
뿌려질 땅은 사람의 마음입니다(마태 13,19).
마음은 인간이 홀로 하느님과 같이 있는 깊은 곳이며,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입니다.
마음은 나름대로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신앙의 신비를 포착하고 파헤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씨앗(4절)은
싹을 틔우기도 전에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리듯이 악에 쉽게 물들거나
하느님을 외면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마태 13,19).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이 땅에 보내주셨건만
자신을 보내주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5절)은
싹은 틔울 수 있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지 못하고 즉시 말라버린다고 합니다.
신심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돌 같은 마음이라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을 싹틔우기는 하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즉시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풍성하게 자라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마태 13,21).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7절)은
싹은 제대로 틔웠고 뿌리를 내리게 되지만
울창하게 자란 가시덤불이 숨통을 막아버려 더 이상 자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가시덤불을 세상 걱정과 재물에 의한 유혹으로 해석하면서(마태 13,22)
뿌리는 내렸지만 햇빛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는 씨앗을 말합니다.
한 번 하느님의 말씀을 싹틔운 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8절)은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잘 깨달은 다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을 말합니다(마태 13,23).
좋은 땅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잘 깨달으려고
열린 마음으로,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사람이며(시편 1,2),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음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단지 예수님께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마태 7,21)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대한 신비를 깨달을 수 있고 실천에 옮길 때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합니다.
1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씨와 씨 뿌리는 사람이고,
2독서는 뿌려진 씨가 싹틀 때에 있을 수 있는 고통과 희망입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서 구원의 희망을 찾는 이는
세상의 고통을 이기고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뿌려진 씨요,
스스로 이 세상에 씨를 뿌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과 기쁨을 샘솟게 하시는 씨(제물)요,
고통을 극복하는 사랑과 기쁨을 선언하시는 분(제관)이십니다.
땅은 우리의 마음이며, 우리 공동체입니다.
씨앗은 튼실하고 싹을 틔울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딱딱하게 굳어서 돌 같은 마음이라면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에제 11,19).
하느님의 말씀에 아무런 반응을 느끼지 못하는 공동체라면
반응을 느낄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해주어서 반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떨어진 씨(그리스도)가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씨앗이 떨어질 밭(마음, 공동체)의 흙이
스스로도 좋은 조건을 잘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밭에 씨를 뿌리는 이(선교사)는 밭(사람)의 다른 지형적, 인공적 조건들(이웃들),
그리고
살아있는 일군(봉사자들)들에 의해 더욱 좋은 조건을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도움인 날씨도(대부, 대모) 잘 맞아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제대로 어우러질 때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내 밭만을 생각하고 남의 밭을 망쳐놓을 수는 없을 것이며,
좋은 조건의 밭을 만들지도 못하고,
날씨의 조건이 맞지 않아서인데도 불구하고 뿌려진 씨앗을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일군들의 게으름이나 아집에 의해
씨앗은 아무데나 뿌려질 수도 있을 것이며,
잘 뿌려진 씨앗을 겉으로 드러나게 파헤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밭에 여러 가지 탓이 많을 때 좋은 씨앗을 뿌려놓았다면
새들은 여지없이 찾아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내 마음의 밭은 어떤 상황입니까?
딱딱합니까?
돌이 많이 있습니까?
아니면 가시덤불이 많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다면,
신앙생활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라는 씨앗이 떨어지는
내 마음에,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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