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강론.묵상

[스크랩] 인간, 하느님이 사랑하는 존재

도구 Ludovicus 2007. 11. 8. 22:48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평화!

아침에 담쟁이 위로 빗방울이 연주를 하는 듯 하더니, 홀연히 햇빛
이 살짝 밀고들어와 드리웠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사람만 할까? 지배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아니라 형편없이 약한 존재
로서의 인간으로 시작하여 사랑스러운 인간, 죄스런 인간, 보잘것 없
는 인간, 사악한 인간 등등 온종일 여기에 나열해도 끝이 없을 인간
군상들 그러나 하느님께서 괜실히 인간을 사랑하실까? 오늘은 문득
하느님이 사랑 하는 존재인 나 그리고 인간이란 단어에서 은은히 배
어 나오는 무엇을 느낍니다만, 뭐라 말할 수 없네요.


마태오복음 5,20ㄴ-26 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
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
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
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
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
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
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
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
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매일 매일 초가 타들어 가듯이 시간이 흐른다고 느낄 때 조바심이 앞서
는 것은 당연한 생체적 반응입니다. 더구나 목표를 정한 일들은 그 시간
보다 훨씬 느리게 진척될 때는 오히려 일손을 놓고 싶은 충동이 가득하
겠지요.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나
를 다음 칸으로 옮겨 놓을 때가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우리들에게
무상으로 주시는 깨달음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의 흐름속에
있었을 뿐인데, 얻은 깨침으로 눈이 뜨이고 그 눈으로 읽는 성경에서 전
에 는 그냥 스쳤던 한 말씀에서 감칠 맛을 느낍니다.

오늘은 특히 의로움의 의미가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을 함부로 대접하지
말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사랑할수록 더욱 소중히 하라는 부르심이기
도 합니다. 즉 삐뚤 삐뚤, 울퉁불퉁 사랑을 표현하다보면 사랑할수록 함
부로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직 자신을 사랑하지 않
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랑할 때는 사랑만 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는 무장을 해제하고 대화를
해야 될텐데 잘 안되지요? 그래서 사랑하는데도 이웃을 이 바보, 저 바
보라고 하는 것일테죠. 악의없이 자매에게 바보라고 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면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이 바보라고 칭하는 이
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
이고 의로움을 서로 배울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 만큼 다
표현하고 나면 깨침이 오니까요. 악을 모두 퍼내고 나면 선이 올라오듯
이 말입니다. 언제까지? 라는 질문이 들리네요. 될때까지 입니다. 결국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닿을 수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모든 판단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바보라 할 수 있습니까?
진정 깨달음을 얻은 이는 판단을 보류하고 중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
늘 아래서 누가 누구를 뭐라 하겠습니까? 오직 무식하고 용감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평화로운 사람이 화해할 수 있고 용서를 주고 받을 수 있읍
니다. 같은 죄를 반복하고 고백성사를 반복하는 여정을 가는 분들은 그
래서 자신을 미워합니다. 죄와 고백성사를 오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쯤 멈추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
을 그것이 공동선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응해주는 것도 개선의 또 다
른 방법이기도 합니다. 화가난 나를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
하고 나면 이웃을 용서하게 될 뿐아니라, 결국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대
상은 바로 나였다는 알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나약한 나를 먼저 용서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Ishtar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