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북극 개구리
북극 지방의 개구리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겨울을 난다고 합니다. 땅 속에 들어가 겨울을 나는데 냉혈동물인 개구리는 온혈동물인 포유류와 다르게 체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 가을에 땅 속으로 들어가지만 기온이 급강하를 하면 그대로 표피부터 얼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완전히 얼음으로 뒤덮여 서서히 심장까지 얼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온몸의 모든 세포 중 35%정도는 살아있고, 나머지 세포는 모두 얼어서 완전히 죽어있는 모습으로 7개월을 지낸다고 합니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으면 세포가 서서히 깨어나고, 그 깨어난 세포에서 열을 발생하고, 심장마비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전기충격을 주어서 소생시키는 것처럼 전기를 일으켜 자신의 심장에 충격을 주어 멎었던 심장을 소생시킨답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난답니다. 물론 그 때 많은 수의 개구리들이 얼어서 죽지만 대부분의 개구리들은 다시 살아난다고 합니다.
북극지방의 개구리들이 완전히 얼음으로 뒤덮여 7개월을 살고, 해동이 되었을 때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나도 그런 심장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에 한 번쯤 찾아오던 통증이 아주 자주 찾아옵니다. 통증이 밀려오면 아주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우울해지고, 나빠지고, 의기소침해지고, 아무 것도 하기 싫습니다. 그런 때는 무조건 안정을 취하고, 약을 먹고 쉬어야 합니다. 이런 반복적인 상태가 아주 빈번해집니다. 북극 개구리처럼 그렇게 꽁꽁 얼려서 완전히 대청소하듯 깨끗이 닦아서 개구리가 다시 심장을 소생시키듯 그렇게 새롭게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나 포유류들은 10 중 8-9는 죽겠지만 개구리들은 그렇게 역경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을 찾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개구리뿐만 아니라 사막의 낙타도 사막에서 살면서 사막이라는 환경을 적응하도록 신체구조가 완전히 인간과 다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람은 5시간 밖에 살 수 없어도 낙타는 15일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낙타는 기름 덩어리는 등위에 짊어지고 한번 엄청난 양의 물을 먹은 다음 사막에서 그 물을 아주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수분의 손실이 하나도 없게 한다고 합니다. 낙타가 사막에서 오아시스에서 다음 오아시스까지 가는데 1/3 가량의 몸무게가 실제로 준다고 합니다. 사막에서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7-8일 만에 몸무게가 1/3이나 빠진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리고 북극 개구리도 죽었다 살아나면 약 1/3이 몸무게가 빠져나가고 북극 흰곰은 새로 낳은 새끼를 동면중에 낳는데 어미의 젖을 먹이는 동안 새끼는 매 주일 1kg이 늘고 어미는 3kg이 줄고 겨울을 나는 동안 몸무게를 1/3이나 줄여야 살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동물들의 겨울잠이며 대단한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북극 개구리나 사막의 낙타나 북극곰이 모진 추위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을 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나는 욕심을 냅니다. 개구리처럼 소생할 수 있는 그런 심장을 주시지 않은 것이 섭섭한 것입니다. 낙타처럼 물도 음식도 마시지 않고 그렇게 버틸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은 것이 섭섭하기도 합니다.
얼었다가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심장이나 아플 때 아픔을 정지시켰다가 다시 작동 될 수 있는 심장을 주시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따뜻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다 강구해 주셨고, 겨울에 동면하지 않아도 되며, 북극곰처럼 얼음 속에서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서 가사상태로 살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다른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 은총과 기회에 대하여는 감사할 줄 모르고 언제나 부족한 부분만 조르고 달라고 보채고, 또 어떤 때는 황당한 것도 달라고 조릅니다. 불만이나 불평을 늘어놓기로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진실로 주님을 믿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가 심장까지 완전히 얼음이 되는 것을 보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소생하는 것처럼 아주 냉담한 내 신앙도 주님처럼 부활할 수 있고, 부활하기를 소망합니다. 낙타가 혹독한 사막에서 살아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것처럼 감추어진 깊은 생명력으로 믿음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만져보고 같이 살았던 필립보도 하느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하느님이 같은 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신앙의 측면에서는 아직도 가물가물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욕심을 모두 버리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심장의 통증이 가끔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 않도록 깨끗하게 낫게 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북극 개구리들이 심장까지 얼어붙는 그 고통을 견디며 가사 상태에서 7개월을 살아야 하는 그 아픔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나의 그 교만을 없애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아버지께서 북극 개구리에게 베푸신 은총보다 더 큰 은총을 내게 주셨어도 내가 믿지 못하고 주님의 그 처사를 불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매일 용서를 청하고 삽니다. 그렇지만 아픔은 없애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4.19혁명이 일어난 기념일입니다. 목숨을 잃은 선배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나는 이제 국법에 따라 죽지만 나라를 배반한 일은 털끝만치도 한 일이 없다. 비록 나는 죽고 또 죽을 때까지 심한 고통을 받겠지만, 나에게 악의에 찬 어떤 행위를 가한다 해도 나는 내세의 영복을 위해 즐겁게 받고 참으리라.”
성 남종삼 요한 (103위 성인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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