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3일 부활대축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20,1-9
<또는 마태 28,1-10, 또는 저녁 미사에서는 루카 24,13-35>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꿈보다 해몽
어제는 내가 큰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냥 매달린 것이 아니라 내 목에 밧줄을 매달고, 내 머리랑 몸을 철사로 꽁꽁 묶어서 큰 나무에 매달아 놓고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보고 죽어 마땅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죽지도 않고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정말 속어로 ‘쪽팔려’ 못 견딜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보고 손가락질 하며 비웃는 사람들이 교우들도 있고, 가족들도 있고, 제자들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왜 여기 매달려 있는지 모른다고 투덜거려 보았자 소용도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정말 표현할 수 없는 모멸감에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죽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를 처다 보았더니 밑에는 시퍼런 물이 출렁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묶인 것들을 전부 풀기만 하면 물속에 빠져 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풀리는 것입니다.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으면서 나를 묶어 둔 놈들을 이를 갈면서 눈을 흘기면서 욕을 하면서 화를 내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는데 그 바람에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허리에 대고 틀어놓은 찜질기 때문인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죽었으면 어쩔 뻔 했는가 생각해 보니까 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며칠 전 마음이 심란하여 성지 순례를 하였는데 해미 성지를 갔었습니다. 호야 나무(야훼 하느님을 불러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나무)에 순교자들을 매달아 놓고 생매장터와 진둠벙을 보고 많은 묵상을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진둠벙에서 거꾸로 박혀서 숨을 거두며 버둥대는 순교자들이 마음에 가득히 들어왔습니다. 자리개질을 당하는 순교자들이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배가 터져서 창자가 전부 쏟아지는 끔찍한 모습들이 가슴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여숫골에서 생매장을 당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가득히 담겨왔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전국 각지에서 굴비를 엮듯 묶어서 끌고 온 순교자들을 그 구덩이에 묵인 채 던져 놓고는 삽으로 흙을 퍼서 무릎까지, 그리고 하루 지난 다음날 허리까지, 그리고 그 다음날 가슴까지 그리고 그 다음날 목만 내놓고 생매장하며 배교를 강요하던 포졸들의 모습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매일 점점 깊이 묻혀 가면서 ‘예수님’을 부르던 그들을 보고 “저 사람들이 여수(’여우‘를 충청도에서는 ’여수‘라고 부릅니다.)를 부른다. 어디 여수가 저 사람들을 구해주나 보자” 그러면서 비웃던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 되었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죽음을 닮아서 죽음으로 다가가는 그들을 상상하면서 내가 그렇게 죽게 된다면 정말 배교하지않고 죽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혀 자신이 없는 모습이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며 감히 흉내 낼 여지도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잔인한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잔인하게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100년 후에는 지구상의 50%에 해당하는 많은 생물들이 인간의 손에 의해서 멸종된다고 합니다. 정말 잔인한 인간이 지금도 그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생물을 죽이고, 멸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언제나 그 말을 들으면서 잘 부활하기 위해서 잘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잘 죽지 못하였으니 꿈에서라도 그렇게 멋지게 순교자처럼 죽어보라고 그런 꿈을 꾸었고, 순교자처럼 그렇게 죽을 때의 그 사랑을 체험하라고 그렇게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꿈에서나마 순교자처럼 호야나무에 매달려 있었지만 순교자들과 같이 의연하지 못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부활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 쪽에서는 정말 죄송스럽고, 부활의 기쁨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꿈이 아니라 생시에 그렇게 죽을까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과 손가락질이 점점 크게 살아납니다.
정말 잘 살고 잘 죽는 것이 부활의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맞이합니다. 이제는 주님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처럼 의심 없이 주님의 부활을 믿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부활 신앙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덤처럼 어둡고 침침하고 빛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땅속에 묻혀있지 않고 이제는 광명의 세계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전하며 모범 되게 살아야 함을 새삼스럽게 결심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주님처럼 부활하심을 축하합니다!!
~이 창순 야고보 선생님의 묵상글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한 저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굳게 믿고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열아홉 번째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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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랑이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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