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의 나병이 가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5,12-16
12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렇게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13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셨다.
14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에게 분부하시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하셨다.
15 그래도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왔다. 1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흉한 몰골이 되어야 사는 병이 있다고 합니다. 아주 흉하게 망가져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병은 나병이랍니다. 나균은 사람들의 피부에 고름을 내고, 아주 흉측하게 피부와 신경을 갉아먹으며 살기를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햇빛에 노출되면 빛의 살균력에 의해서 오래 살지 못하고 죽게 되니까 저 살기 위해서 속으로 파고 들어간답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리면 환자들은 빛을 싫어하고, 무얼 뒤집어쓰고 볕에 노출되기를 꺼린답니다. 그래서 어두운 굴에서 살거나 두건을 쓰거나 빛을 가린 다음에 밖으로 나와 살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이미 갉아먹은 신경조직 때문에 통증을 모르는 곳으로 나균을 내 몰아야 한답니다. 그래서 흉한 몰골과 고름 범벅이 되어야 그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말 그 아픔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그 고통 속에서 버거운 매일을 살고 있는 나환우들을 잠시 상상할 뿐입니다. 그들의 통증이 어떤지 어떤 의사의 얘기를 들은 것이 기억납니다. 의학적으로 그 아픔을 설명할 방법이 없답니다. 신경조직을 나균은 제일 먼저 갉아먹고 아프게 하는데 야구 방망이로 정강이를 40여대 연타하는 것과 같은 아픔이라고 합니다. 사실 나는 정강이를 야구 방망이로 한 대도 맞아 본 적이 없으니 그 아픔은 단지 상상할 뿐입니다. 어려서 풀을 베다가 물뱀이 다리를 타고 올라서 엉겁결에 낫으로 정강이를 베어 찍어 피를 많이 흘리고, 장작을 패다가 장각개비가 정강이를 때려서 새카맣게 멍이 들은 적은 있으나 그렇게 모질게 맞아 본 적도 없어서 그 아픔은 다만 상상할 뿐이랍니다. 그렇게 아픔을 견디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들이 기피하고 더러운 고름과 전염 될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배척당하는 그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깨끗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간절한 소망일 것입니다.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고름 범벅이 된 그 아픔을 모조리 없애 주실 분을 이 세상에서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의사도 그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이 겉이 깨끗하게 되면 속도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낫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예수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쳐주시고자 하시는 의향(意向)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의향을 여쭈어 보고 있습니다.
“더러워 질 대로 더러워진 저를 귀하신 당신께서 고쳐 주실 수 있나이까? 죄인인 저를 가까이 보시기만 하셔도 당신이 부정해지실텐데 그래도 저를 깨끗이 해 주실 수 있나이까? 사람들이 저를 모두 싫어해서 당신께서 외면하시면 저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 저를 살려 주십시오. 예수님, 이렇게 간절히 빌고 있사오니 저를 깨끗하게 해 주소서.”
예수님의 손길을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나병 환자가 느끼듯 사랑이 가득 담긴 그 분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얹으심을 느낍니다. 온갖 더러움으로 고름 범벅이 되면서도 나병환자보다 더 잘못하는 것은 겉으로는 깨끗한 체 하면서 나균처럼 나를 갉아먹고 있는 온갖 더러운 죄악이 내 속으로,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내 오장육부를 갉아먹고, 내 심장과 폐를 갉아먹고, 내 뇌를 파고들어 정신을 혼돈하게 하고, 미치게 하여 날뛰게 하고, 숨골을 파고들어 숨을 쉴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겉만 멀쩡하면 좋은 줄 알고 멍청하게도 숨기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느라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 것을 숨기고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나 자신에게 주님께서 손을 들어 머리에 얹으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낀답니다. 나병환우보다도 더 더럽고 추한 내 모습을 속속들이 다 아시는 주님께서 그런 더러움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냥 손을 얹으시며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만드시는 것을 느끼면 행복하고 가슴 벅찬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답니다.
혹시나 내가 그렇게 깨끗해지고 내 더러운 육신을 깨끗하게 고쳐졌다고 함부로 떠벌이지 않도록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기적에 목숨을 걸고 그것만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씀인 것을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치유는 뒷전에 두고 세상에서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런 속물근성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못하는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마저 없다면 어떻게 신앙생활에서 느끼는 재미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재미에 빠지고 싶기도 한 것이 솔직한 나의 모습이랍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도, 더러운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는 욕망도, 주님께서 내게 손을 얹어 주시고, 축복해주시며,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신다는 믿음도 모두 간직하고 싶은 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곧 나의 병이 없어지고 완전히 낫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의 통증이 심하게 다가오면 이 아픔도 빨리 거두어 가셨으면 좋겠다고 매달립니다. 대전교구의 장영식 토마스 신부님이 심근경색증으로 위중하십니다.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나도 그 똑 같은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지도 못하고 육신과 영혼이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집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정말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요.
주님, 저를 낫게 하소서. 그러나 당신의 계획안에서 낫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라면, 당신께서 마음에 드는 일이라면 감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 모든 것을 감수하도록 은총으로 도우소서. 사랑의 주님!!
- 순교자와 함께하는 하루 -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 외에
다른 무엇을 찾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최양업 신부의 여섯 번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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