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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1월 11일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독서 복음묵상

도구 Ludovicus 2008. 1. 11. 00:14

 

 

 

1월 11일 주님 공현 후 금요일 독서 복음묵상

 

독서 요한 1서 5, 5-13

군인의 존재 목적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함으로

국민의 안녕과 국가 질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군 복무 중에 이런 의무와

전혀 관계없이 생명을 잃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휴가 중에 홍수를 만나서

급류에 떠내려 갔다든가

아니면 친구들과 레저활동을 즐기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의 경우를 두고

비전투 손실이라고 표현한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비전투 손실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시간을 내어 교리공부를 하고 대부모님을 모시고

감격스런 영세식을 치르게 됩니다.

미사에 참례하고 교회단체에 들어가 봉사를 하고

기도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하느님을 증언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물론이고

이웃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전하고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그렇게 열심한 사람이

어느 날 안보이는가 싶더니 뜻밖에도 냉담을 하거나

다른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지요.

이 시대에 순교로 하느님 나라에 가는 일은 드물지만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과 함께 잘 살다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분명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런 믿는 이가 하느님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은 정말 비전투 손실입니다.

냉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의 삶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비전투 손질이 있을 겁니다.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버리고

이제부터라도 주님의 말씀안에서 경계하고 근신해야겠습니다.


복음 루카 5 12-16

작년 연말에 있었던 제24회 가톨릭 대상 시상식에서

전성민 타대오 이덕림 젬마씨가 사랑부분 수상을 했는데요,

이덕림 젬마씨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한센병을 앓았습니다.

한창 예쁜 나이인 스물네 살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사십팔 년 전에

병을 앓게 되자 그분은 집을 나와서

요양 시설에 입원을 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덕림씨는 절망하지 않았고

천형이라는 한센병을 치료하면서

마을 구판장 일을 맡아 했지요.

부녀회장과 성모회장까지 맡아서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아동복을 재봉틀로 만들어 파는 일을 하다가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손가락 모두가 잘리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견뎌 냈습니다.


그런 과정속에서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해온

이 덕림씨는 한센병 시설인 경남 산청군의 성심원에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돌보아 왔는데요,

그런 남다른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가톨릭 대상 수상자로 선정이 됐습니다.


또 올해부터 평화신문에서는 소록도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는데요,

소록도 역사의 산증인인 소록도 전 병원장인

조창원 바오로옹의 회고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나환우들의 한과 눈물의 역사와

그 속에서 피어난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록도 한센인들의 모든 역사와 은총,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만날 수 있는

조창원 옹의 글에서 우리는 가장 낮은 자를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될겁니다.

깨끗이 치유받은 나병 환자처럼 

예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우리도 치유받고

영적으로 풍요로워지는 은총을 

평화신문에 연재되는 소록도 이야기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함께  하소서

예수님 

온 몸에 부스럼과 상처가 난 나병 환자가 주님을 찾아 왔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나병이 치료가 가능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의식속에는 하늘이 내린 벌로

남아 있을 정도로 무서운 병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나병은 더욱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이라서

많은 나병 환자들은 치유받는 것을 포기하고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현대인들도 나병은 아니더라도 고통속에 있을 때

복음속의 나병환자처럼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만 희망이 있고 해결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가 동네를 가로질러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올 때는

이미 죽기를 각오한 결심이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저희는 살아갈면서  쉽게 자포자기 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간에 주님께 구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그 길이 더 쉽고

빠른 길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온몸에 나병으로 고생하는 이가 예수님을 찾아와

엎드려 구하며 고백한 것은 먼저 믿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해달라는 막무가내의 조름이나

깨끗케 해주시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협박이나 강요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달라는 전폭적인 내맡김입니다.

이 고백속에서 나병환자가 이미 치유를 맏았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듯이

저희도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출처 :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글쓴이 : 요하네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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