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싱싱한 수산물과 천혜의 입지를 갖춘 안면도 꽃지, 만리포, 천리포, 몽산포 등의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태안반도가 검은 기름띠의 대습격을 받았다.
지난 7일 오전 7시6분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 크레인(14만5천t급 )이 정박중이던 홍콩선적 14만6천t급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한 것이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이 사고로 유조선 왼쪽 오일탱크에 3개의 구멍이 나면서 원유 1만2천547㎘가 48시간에 걸쳐 태안 앞바다로 유출됐다.
이는 1995년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원유유출 사고 때 5천35㎘가 유출됐던 것과 비교하면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사고 해역으로부터 불과 8㎞ 가량 떨어져 있는 태안반도에는 사고 당일 저녁부터 죽음의 검은 띠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방제당국은 당초 빨라도 24시간, 늦으면 36시간 이후 해안까지 기름띠가 확산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사고 해역과 가까운 만리포, 천리포, 의항리 등의 해안에는 사고 발생 13-14시간 후부터 거대한 기름띠가 밀려들었다.
해상에서는 나흘만에 사고 지점으로부터 남방 30㎞, 북방 20㎞까지 기름띠가 퍼졌고, 해안에서도 소원면 모항항에서 원북면 가로림만 입구까지 해안선 40㎞에 폭 10-30m의 기름띠가 엉겨 붙어 수려했던 바닷가가 순식간에 `기름밭'으로 변했다.
또 충남 서해 최대 양식어장과 갯벌을 간직한 가로림만과 세계 최대의 철새 도래지이자 바닷고기의 산란장인 천수만까지 기름띠의 위협을 받았다.
해상의 거대한 기름띠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남방 저지선이었던 태안군 가의도를 뚫고 안면도 해상까지 퍼져 나갔고, 유출된 원유의 최후 형태인 타르덩어리는 사고 지점으로부터 130여㎞ 떨어진 전북 고군산도 해역까지 확산됐다.
사고가 나자 정부는 태안해안경찰서에 방제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사고 해역에는 해경 경비함정과 해양오염방제조합 방제선 등을 투입해 기름의 확산 저지에 나섰으나 초속 14m 이상의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로 초기 방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는 또 기름띠의 확산 속도를 잘못 분석한 초기 예측의 오류와 방제장비의 공급 지연 등으로 피해 지역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당시 하루 1천300t 수준이던 방제 능력을 하루 5천500t(3일간 1만6천500t)의 기름을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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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고 후 19일간 전국에서 수십만 명의 자원봉사사들이 태안반도로 몰려와 방제작업을 도왔음에도 해상과 해안에서 회수한 원유는 폐유 4천88㎘, 흡착 폐기물 2만949t에 그쳤다.
다행히 기름띠는 천수만과 가로림만에는 큰 피해를 내지 않았지만 태안반도 해안선 167㎞를 초토화시켜, 태안과 서산 지역 11개 읍.면의 473개 어장(5천159㏊)과 태안의 15개 해수욕장이 피해를 봤다.
정부는 사고 후 닷새째 되던 11일 충남 태안, 서산, 보령, 서천 등 6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충남도에 예비비 59억원과 특별교부세 10억원을 지원했다.
또 당장 생계가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긴급 자금 300억원을 편성, 충남도를 통해 2008년 1월말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처럼 참혹한 환경재앙을 몰고온 이번 사고도 풍랑주의보 속의 무리한 운항과 사고 선박 관계자들의 안이한 대처 등에서 야기된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이에 태안해경은 24일 원유유출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 선장 김모(39)씨와 예인선장 조모(51)씨 등 2명을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기상이 악화되기 전에 배를 안전한 해역으로 피항하거나 닷을 내려 사고를 예방해야 했음에도 거센 풍랑 속에서 무리하게 운항을 강행하다 사고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해경의 윤혁수 경비구난국장은 "처음 사고가 났을 때의 피해 상황을 감안하면 현재 해상방제는 거의 마무리 단계로 봐야 한다"면서 "사람의 접근이 곤란한 해안과 도서지역의 오염 상태를 파악해 추가 오염 피해가 없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사고 후 25일까지 19일간의 방제작업에는 누계로 어선 8천626척, 경비정 826척 등 1만641척의 선박과 199대의 헬기가 동원됐으며 오일펜스 31.9㎞, 유흡착재 32만9천572㎏, 유처리제 28만653ℓ가 투입됐다.
또 자원봉사자 27만1천여명을 포함해 주민 10만3천여명, 군인 7만7천여명, 공무원 2만7천여명, 소방 1만1천여명, 경찰 1만여명 등 모두 51만5천985명이 방제작업에 동참한 것으로 집계됐다.
(태안연합뉴스) 윤석이 기자 seokyee@yna.co.kr
12월 7일 발생한 충남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 사고로 태안.서산 지역의 어장 수천ha가 기름띠에 덮여 황폐화되는 바람에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어민들은 절망감 속에 신음하고 있다.
충남도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서산 가로림만에서부터 태안 안면읍 내파수도 연안의 해안선 167km가 기름띠로 뒤덮였으며, 태안과 서산 지역에서만 11개 읍.면 473곳의 어장 5천159㏊와 만리포 등 해수욕장 15곳, 태안과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섬 302곳 가운데 59곳(19.5%) 등이 기름띠에 뒤덮이는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 피해를 봤다.
게다가 앞으로 피해조사가 더 진행되면 어장 368곳, 8천571㏊와 육상의 종묘시설 등 81곳, 248㏊ 정도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돼 충남도는 공식적인 피해규모 발표를 미루고 있다.
양식장 등의 피해 범위가 워낙 크다 보니 '전체 피해액이 수천억원이 될 지, 수조원이 될 지' 잠정 산출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간접적인 피해도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청정 해안' 태안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끊겨 펜션, 횟집 등의 업소들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1천300만명 여름 피서객에다 주말과 휴가 관광객까지 더하면 해마다 태안 지역을 찾아 오는 외지 관광객은 연인원 2천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번 사고로 이들 관광객 대부분이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 태안 지역으로서는 연간 수백억원의 관광수입이 날아갈 처지에 놓였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태안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삶의 터전을 되살리기 위해 연일 방제작업에 매달리면서도 정부의 피해보상 및 복구지원 규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정부는 우선 신속한 사고수습을 위해 충남도에 59억원의 예비비와 10억원의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고, 당장 생계가 어려운 주민들에게 2008년 1월말까지 현금 300억원을 무상지원할 방침이지만 주민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사고 책임소재가 분명히 가려지고 피해상황과 규모에 대한 증빙자료가 취합돼야 실질적 피해보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주민들은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사고의 경우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유조선 선주가 방제비용과 어민 피해보상금 등을 1차적으로 부담하게 되나 유조선측은 최고 책임한도액인 1천300억원 범위 내에서만 책임지고 초과하는 부분은 최대 3천억원 한도 내에서 유류오염손해보상국제기금(IOPC FUND)에서 떠안는다.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주민들은 해상도 높은 비디오나 사진기로 피해 현장을 일일이 촬영해 증거로 확보해야 하는데 이 같은 증빙자료조차 보험사와 조사기관에 의해 채택되지 않으면 모두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만다.
실제로 피해보상 주체인 중국의 SKULD선주상호(P&I)보험사와 IOPC펀드 측은 사고 직후부터 현장 조사와 자료수집을 벌이면서 해안 방제작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는지 여부도 면밀히 관찰하고 있어 보상심사 과정이 간단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주민들은 또 '객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피해뿐 아니라 향후 수십년간 생태계와 지역 환경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 정부 차원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오래 걸리고 얼마나 받을 지도 모르는 국제기금의 보상만 갖고는 어업과 관광업에 생계를 걸어온 태안 주민들을 살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명확한 세무신고서나 어획량 자료 등이 없어 보상 근거가 불분명한 해녀와 맨손어업자 등은 보상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피해 어민들은 배상 주체인 IOPC펀드 등에 맞서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유출 피해대책위'를 구성하고, 전문 용역기관인 '대화감정평가법인(대표이사 신동귀)'에 원유 유출사고에 따른 어업피해 실사를 의뢰하는 등 본격적인 피해조사 준비에 나섰으나 여전히 불안감은 가시지 않은 상태다.
유류유출 피해대책위의 이원재 위원장(서산수협 조합장)은 "맨손 어업자 등을 포함해 피해어민 모두에게 가능한 한 많은 증빙자료를 제출토록 요청했다"면서 "그럼에도 많은 영세어민 등에게 충분히 보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특별법 제정 등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12월 10일 충남 태안군 일대 원유유출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국세 납부기한 9개월 연장, 30% 이상 재산 피해자에 대한 세금 감면, 재해로 파손된 집 등 건축물 대체 취득시 지방세 면제, 공공시설 피해액의 최대 90% 국고 지원, 공공보험료.국민연금보험료의 감면.경감 등 다양한 혜택을 주기로 했다.
(태안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kjunho@yna.co.kr
원유 유출사고로 기름띠와 뒤엉켜 시커멓게 변했던 충남 태안 앞바다와 해변이 전국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방제 노력 덕분에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사고 이후 20일 가량 동안 태안 바닷가의 방제작업에 투입된 사람은 모두 60만2천여명에 달한다.
이는 태안군의 전체 군민 6만7천여명의 9배에 가까운 규모로, 외환위기 때 나라를 살리자고 장롱 속 돌반지까지 들고 나왔던 국민적 성원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 가운데 순수 자원봉사자는 42만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절반 가량은 사전연락도 없이 현장을 찾아온 사람들로 알려졌다.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 사고를 극복하려는 국민적 성원은 연말 송년회 대신 자원봉사를 나서는 새로운 풍속도도 만들어 냈다.
지난 23일 소원면에서 만난 차모(56.대전)씨는 "산악회 송년모임을 취소하고 회원과 가족 등 50여 명이 자원봉사를 나왔다"며 "술잔이 오가는 송년회보다 열심히 땀을 흘리는 자원봉사 송년회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가족들과 함께 한 봉사활동이어서 교육적 효과도 컸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성에 힘입어 기름띠가 엄습했던 소원면 만리포와 원북면 신두리 등의 해수욕장 백사장이 예전의 깨끗한 속살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아직 점점이 남아 있는 기름띠와 해변을 가득 메운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라면 `기름밭'으로 변했던 사고 현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코를 찌르던 기름 냄새도 거의 다 사라지고 넘실대는 파도도 원래의 푸르름을 회복했다.
한데 모아진 자원봉사자들의 힘은 방제작업에 엄청난 속도를 붙여, 사고 현장을 찾은 미국 해안경비대 등의 외국 전문가들로부터 탄성을 자아냈다.
방제 노하우를 조언하기 위해 태안을 찾은 외국 전문가들은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들 때문인지 방제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어업은 곧 재개할 수 있겠고 내년 여름이면 해수욕장 개장이 가능할 정도로 환경이 복원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기름띠가 상당량 제거되면서 겨울철새들도 다시 태안 해변에 날아 들어, 20일께부터 소원면 및 원북면 해변 등에서 청둥오리와 왜가리 280여마리, 원앙(천연기념물 327호) 한쌍, 고니(천연기념물 201호) 4마리가 관찰되기도 했다.
대한수렵관리협회 충남지부의 구용운(60) 지부장은 "사고 직후 검은 기름이 태안반도를 휘감았을 때만 해도 언제쯤 다시 사라진 철새를 볼 수 있을까 막막했다"면서 "아직 개체수가 많지는 않지만 철새가 다시 날아 들어 생태복원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의 전조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바위와 자갈에 눌어 붙어 있는 기름을 닦아내기 위해 고온.고압수를 분사하는 고압세척기 수십 대가 동원되고 있지만 결국에는 사람이 일일이 닦아내는 작업이 수반돼야 해 완전히 기름기를 제거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해안 방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봤지만 기름띠와 타르 덩어리로 오염된 충남 태안과 전북 군산 앞바다의 59개 섬에는 아직 방제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한국해양연구원의 이문진 박사는 "1995년 발생한 씨프린스호 사고 때보다 방제능력이 향상됐고 오염된 해안이 짧기는 하지만 해안에서 기름을 어느 정도 깨끗이 닦아내는 데는 최소한 2-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장의 피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생태계 오염인데, 생태계의 완전 복원에는 수십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태안 현장을 둘러본 세계해사대학의 올로프 린덴 교수는 "통상 기름유출 사고 이후 먼바다의 생물은 3-6주, 갑각류 등 수중생물은 2-3년, 넙치 등 깊은 바다 생물은 5-6년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이재홍 자연보전국장도 "유류사고 후 5년이 지나면 모래해변이나 암석해안 등은 대체로 회복되지만 간석지나 염습지는 20년이 지나도록 회복되지 않기도 한다"면서 "생태계가 원상태를 되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경부와 해양수산부는 우선 12월중 완료를 목표로 이번 사고로 생태계가 어느 정도 훼손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당국은 이어 내년 한해 동안 자연자원 정밀조사를 벌인 뒤 장기계획을 세워, 2009년부터 10년간 이번 사고로 훼손된 해안 사구의 복구와 생태계 복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태안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cob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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