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는 우리의 기도![]() (루카 1,67-79) |
“저는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 매일매일이 은총의 나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잘 알고 지내던 한 자매가 찾아와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돈을 꾸어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랑으로 그 사람에게 아주 큰돈을 꾸어주었는데 그는 얼마 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일 년 정도 병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근처 성당 신자들이 저를 방문했지만 냉정하게 그들을 배척했습니다.
그런데도 연세가 지긋하신 신자 몇 분이 계속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함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기도 중에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를 찾아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편협한 마음과 어리석음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 그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렸던 것입니다. 주님은 신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다른 신자들을 통해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이 절대로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즈카르야는 오랜 기다림의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눈으로 하느님 약속의 시작을 보았다.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죄와 죽음에서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세상에 구원의 빛을 비추실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는 드디어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사실 즈카르야는 천사 가브리엘이 요한의 잉태소식을 전했을 때 믿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는 자신의 불신을 넘어서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를 보여주는 노래를 부른다. 혀와 귀가 풀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보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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