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성지순례

운젠 지고쿠(蕓仙地獄)

도구 Ludovicus 2012. 10. 5. 20:24

 

 

 

 

 

 

 

 

 

 

 

 

운젠 지고쿠(蕓仙地獄)
  "주님, 주님의 손에서 저를 떼어놓지 마소서!"
 운젠 지고쿠에서 순교한 바오로 우치보리 사쿠에몬(內堀 作右衛門,?~1627)의 간절한 기도다.
 일본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경관이 수려하고 많은 온천을 자랑하는 운젠(蕓仙).

 이 아름다운 지대가 약 380년 전

일본 키리시탄에겐 천국을 가기 위해 꼭 거쳐야만 했던 지옥이었다.
 에도(현 도쿄)막부 가톨릭교회 박해시절, 시마바라(島原) 영주 마츠쿠라 시게마사(松倉 重政)는

 키리시탄을 굴복시킬 잔혹한 형벌을 고안해냈다.

바로 운젠의 뜨거운 유황물이 이글거리는 화산구에 신자들을 집어넣어 배교를 강요하는 '지고쿠 세메'(地獄責)이었다.

이때부터 나가사키와 시마바라에서 잡힌 키리시탄은 누구도 이 지고쿠 세메를 피해갈 수 없었다.
 박해자들은 신자들을 발가벗겨 칼로 수십군데 베고 찌른 뒤 뜨거운 바위 위에 눕힌 뒤 열탕 물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배교를 강요했다.

그런가 하면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밧줄에 매달아 열탕에 넣었다 건졌다를 반복했다.

 피부가 벗겨지고 뼛속까지 화상을 입었다.

이같은 모진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열탕에 넣어 쪄 죽였다.

 운젠 지고쿠 세메는 1627년부터 1632년까지 5년간 지속됐다.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이가 바오로 우치보리 사쿠에몬이다.

사제를 돕다 체포된 그는 시마바라에서 어린 세 아들 발다사르와 안토니오, 이냐시오의 순교를 목격했다.

그 역시 손가락이 잘리고 인두로 이마에 '切支丹'(그리스도인의 일본표기 - 키리시탄으로 발음) 이란

 낙인이 찍힌 채 운젠으로 끌려와 순교했다.

운젠 순교자 가운데 지난해 시복된 26위와 1867년 교황 비오 9세로부터

복자품에 오른 6위 등 총 32위의 순교 복자가 탄생했다.
 나가사키에서 체포된 조선인 이사벨라도 운젠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널리 공경받고 있다.

1629년 8월 3일 운젠으로 끌려온 그는 600여 명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3일간의 지고쿠 세메를 이겨냈다. 고문하다 지쳐버린 형리들이 참다못해

"우리는 10년, 20년이고 계속할 것"이라고 하자 이사벨라는 "10년, 20년은 잠깐 사이,

 100년이라도 나는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이 고통을 참고 그 시간을 행복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형리들은 그의 손을 잡고 강제로 '배교 서약서'에 서명하게 하고 내쫓았다.
 운젠 30개 열탕 가운데 산 중턱에 있는 '오이토 지고쿠'에는 나가사키대교구에서 1961년에 세운 십자가 순교비와

 이전 1939년에 설치한 비석이 있다. 십자가 순교비에는 안토니오 이시타 신부와 미카엘 나카시마 수사 등

순교 복자 6위 이름이 새겨 있다.

비석에는 시인 이쿠타 쵸스케가 순교의 피를 운젠의 붉은 철쭉에 비유해 지은 시 가운데

 '성스러운 불이 타오르다'라는 싯구가 새겨 있다.
 온천 관광지로 변해버린 오늘날의 운젠.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순교비를 무심하게 지나치지만

그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장엄한 신앙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살과 뼈가 익는 고통을 이겨낸 순교자들의 신앙과 용덕,

그 믿음을 닮으려 침묵하고 기도하는 순례자들. 교회는 매일 매순간 부활의 신비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