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부활 제5주일 - 요한. 15,1-8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든든한 지주이자 뿌리이신 주님>
새벽시장에서 일하시는 한 형제님을 만나 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때 경기가 좋던 시절도 회상하셨습니다. 장사가 너무나 잘 돼 돈을 일일이 셀 시간이 없었답니다. 할 수 없이 그날 번 돈을 큰 보따리에 집어넣고 발로 꾹꾹 밟았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 못 보게 하고는 흐뭇한 얼굴로 돈을 세던 그런 시절도 있었답니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랍니다. 그래도 한밤중에 물건을 구매하러 올라오는 지방 상인들을 맞이하려 저녁 무렵 가게로 나가셔서 새벽까지 가게를 보신답니다.
계속 건네시는 말씀이 저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잠시 가게 문을 닫아건답니다.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향하는 곳은 침대도 아니요, 사우나도 아니요, 성당이랍니다. 새벽미사가 시작되기 전 그 어둠을 뚫고 몇몇 신자상인들은 성당으로 모인답니다. 그 이른 새벽녘에 미사 전까지 성체조배를 하고, 또 레지오 마리애 회합도 하신답니다. 그런 고된 일상 가운데서도 그분들이 늘 챙기는 곳은 어려운 복지시설입니다. 뭣 하나 더 해주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십니다.
고달픈 일상생활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과 끈을 놓지 않으려는 그분들 삶에서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시댁 식구들이 사이비성이 농후한 종교를 믿는 집안에 시집가서 오랜 세월 무지막지한 고초를 겪으셨던 한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박해가 컸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주교 신앙은 그녀 삶에서 목숨과도 같은 부분이었기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천주교와 무슨 악연이 있었던지 그녀의 입에서 천주교 '천'자만 나와도 '재수 없다'며 벼락같이 화를 내고 노골적으로 천주교를 반대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시어머니는 강제로 그녀를 끌고 자신들의 집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절대로 하느님과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시집 식구들의 물샐 틈 없는 감시체제 하에서도 그녀는 은행이나 시장을 오갈 때 생기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살짝 살짝 가까운 성당을 찾아 성체조배를 하는 등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해나갔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그러다가 발각돼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그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 오랜 세월,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녀가 받아왔던 고통이나 수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그토록 참을 수 없는 핍박 속에서도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오신 그 자매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이란 때로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투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 오랜 고통의 세월을 잘 참아온 그녀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시댁 모든 식구들의 천주교 입교라는 특별한 선물을 마련해주시더군요.
그녀의 독특한 신앙여정을 바라보면서 "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살레시오 회원으로서 아주 부족한 저이지만 늘 애타게 갈망하는 소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세파에 흔들리는 아이들의 든든한 뿌리로 존재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든든한 뿌리인 저를 통해 비쩍 마른 아이들이 왕성하게 영양분을 흡수해서 보란 듯이 한번 일어서게 만들고 싶습니다.
이런 바람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백성들의 든든한 지주이자 굳건한 뿌리가 되고 싶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셨기에 오늘 복음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분은 영양결핍증세가 심각한 우리에게 매일 영양분을 공급해주시는 생명의 뿌리입니다. 죄와 악행으로 시든 우리 영혼의 가지에도 다시금 생명의 수액을 보내주시는 구원의 근원입니다. 가지가 뿌리 없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주님 없는 우리 삶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떠한 시련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물러 있기를 기원합니다. 모진 신앙의 박해 가운데서도, 끝도 없는 방황과 좌절 사이를 걸어가면서도,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죽음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끝까지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기를 소망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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