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한 장의 힘
어느 날 가까운 동네에 사는 환우 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님은 젊었을 때 본당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인데 어느 시기부터 냉담하기 시작하여 오랜 세월을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생활하며 깊은 병고에 시달리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그 형제님을 방문하면 따가운 눈초리로 매섭게 바라보며 자신의 집에 오지 말라고 냉대를 하였습니다.
언젠가 신부님의 강론말씀에 냉담자 가정에 주보를 전달해주면 회두하기 쉽다는 말씀이 생각나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하느님께로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세상을 떠나 병자성사도 받지 못하고 가시어 마음이 무척 슬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구역내 냉담 가정 20세대에 주보를 넣어드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경우에는 주보를 땅바닥에 팽개치는 가정도 있고, 어느 경우에는 구역장님 성의가 고마워 성사를 보았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분은 지금 성당에 나가지 않아도 소식은 다 알고 있다며 조금만 더 있다 나가겠다는 자매도 있는가 하면, 자신의 집에는 주보를 넣지 말라던 한 자매가 요즘 나를 만나면 먼저 인사하면서 마음 정리하고 가겠다고 하는 분도 만났습니다. 정말이지 주보 한 장의 힘이 이렇게 큰지 몰랐습니다. 바보처럼 냉담자를 만나면 시간 있을 때 읽어보라며 주보를 돌리고 다닙니다.
3년 전 선종하신 마티아 형제님이 기억에 남는 것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형제님을 방문하면 기도해 달라하시는데, 자매님은 다시는 대면하기조차 싫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 집에 와서 이런 냉대를 받아야 하는지’ 하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형제를 사랑하셔서 저를 통해 병자성사와 봉성체, 선종 후 장례미사에는 반장님들과 함께 장지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난 지금 자매님께서 요즘 들어 마음의 문을 여셨으니, 어느 날 저녁미사 때 성사는 안 봤지만 성당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이지 냉담자 한 분 회두시키기가 너무도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005년부터 2반 반장 정 데레사 자매와 함께 서로 분담하여 주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성당에 관심을 갖는 가정, 예비신자 교리교육 중단 가정, 냉담자 등등...
때로는 저 역시 나약한 마음이 들어 비바람치고 매섭게 추운 날은 ‘오늘은 그만둘까?’하고 생각하다가도 ‘아니야! 그래도 누군가 기다리는 가정이 있을거야!’ 하는 마음에 오늘도 변함없이 주보를 챙겨 길을 떠납니다.
인천교구 옥련동 성당 구역장 박 마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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