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가톨릭 성지

[스크랩] [대전교구] 공주 황새바위

도구 Ludovicus 2009. 1. 21. 20:32

공주 황새바위 성지를 찾아

 

2005년 9월 11일(일)

 

 순교 성지 황새 바위는 4대 박해(신유, 기해, 병오, 병인)를 비롯한 천주교 박해 100여년 동안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믿음과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온갖 고문과 피 흘림 속에서 끝내 목숨을 바친 거룩한 땅이다.

 공주 감영록에 기록된 순교자 이름만도 248위이고 무명으로 처형된 신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진리를 위하여 죽음 앞에서 조차 굴복하지 않았던 용감하고 위대한 신앙 선조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황새바위 성지를 찾는 공주의 아침은 유난히도 밝고 맑으며 광채를 띠고 있었다.

 금강교를 건너 백제왕릉으로 가는 길로 접어 들면서 바로 좌회전하면 황새바위 성지인데 너무도 조용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잘 정돈된 성지 입구에서 마음을 정돈하고 성지에 다가서니 깔끔한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성지의 푸른 정원과 십자가의 길이 안내한다.
 

 <황새바위 성지 입구> 

 

<성지 바위 표석> 

 

 황새바위라는 지명은 이 근처 바위 위에 소나무가 밑으로 늘어져 황새가 서식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일명 항쇄바위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죄인들이 목에 항쇄(목에 씌우는 칼)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성모 마리아상과 기도하는 여인상> 

 

<성지 돌계단 입구> 

 

<십자가의 길 시작을 알리는 표석> 

 

<성지 순례길-오솔길..참 조용하고 아늑하다> 

 

<십자가의 길> 

 

<정원> 

 

<잘 가꾸어진 정원-봄에는 꽃 바다를 이룬다> 

 

<순교탑>

 

 순교탑은 순교 선열들이 하늘 나라를 얻기 위하여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자기 몸을 파기하고 오로지 주님의 십자가 진리만을 따르신 높은 뜻을 기리고 이를 본받기 위하여 한국 교회 200주년이 되는 해에 세운 것이다.
 

<야외 미사를 보는 제대> 

 

<야외 광장에 세워져 있는 선돌> 

 

<순교탑> 

 

<야외 성전>

 

 순교 성지 황새바위는 공주에 있는데 일찍부터 죄수들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던 관찰사와 감영이 있었다고 한다.

 충청도 각 지방 뿐 아니라 때로는 타 지역에서 잡힌 소위 천주학 죄인들이 자기 지방에서 1차적으로 심문과 고문을 받고도 배교를 하지 않을 때, 이 곳 감영으로 이송되어 또다시 교묘한 질문과 심문과 지독한 고문으로 배교할 것을 강요 당하고, 그래도 배교를 하지 않으면 감사의 명에 따라 사형에 처해 진다.

 형이 집행될 때에는 맞은 편에 위치한 공산성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어 구경하였고, 참수된 머리는 나무에 매달아 천주학을 경계하게 했으며, 처형된 시체는 부근 언덕에 매장하거나 그대로 밭에 내버려두어 비가 올 때는 피와 함께 순교자들의 시체가 재민천으로 쓸려 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순교한 분들은 충청도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단원 이존창(루도비꼬 1801년 4월 10일 순교)와 성인 손자선(토마스 1866년 순교)을 비롯하여 기록된 숫자만도 248위가 되며, 그 외에도 무명 순교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순교탑> 

 

<순교 광장과 선돌> 

 

<제대> 

 

<제대에 있는 예수님 고상>
 

<순교 성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제대에서 바라본 성지 모습> 

 

<순교탑 옆에 있는 유물> 

 

<성지에 가는 돌계단 길> 

 

<향기가 짙은 새우난> 

 

<관리 사무실>
 

<공주 지역 주요 은거지 표시판>


 

<성모상과 기도 여인 모습>
 

<황새바위 초대전 현수막>
 


<기도하는 신자의 여인상>

 

 <고통과 주님의 도우심>

 

 한 동료가 겁이 나 벌벌 떨면서 "참말이지 나는 어떻게 형벌을 창낼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지요?"하고 물을 때 순교자 이도기(바오로 1798년 6울 12일 56세 순교)는 "나도 고문의 형벌이 두렵소. 그러나 천당을 헐값으로 살 수 있나. 고통은 영원한 행복을 살 수 있는 돈일세. 용기를 내서 얼마 동안만 더 고통을 참아 받도록 하게."라고 답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면 가장 혹독한 형벌일도 참아 받기가 쉽지만, 만일 주님께서 나를 버리시면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오. 예수 마리아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니 나는 아무 것도 무섭지 않소."라고 말했다.

 그는 옥에 갖혀 고문을 당하지 않으면 몸이 마르고 창백하고 풀이 죽어 있고, 형벌을 당하게 되면 오히려 생기가 돋았으며, 죽을 시간이 다 되엇다고 알려주니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고 전한다.


 


<황새바위 성당 입구 모습>

 

 황새바위 순교자들은 기록으로 나와 있는 248위 명단을 보면 이 곳 공주 지역이 1798년순교자 이도기 바오로로부터 1879년 옥사한 손 카타리나까지 100여 년의 한국 천주교 박해 역사 시초부터 끝까지 피를 흘려 제사를 바친 거룩한 땅이다.

 신유박해(1801년)때는 당시 사학의 괴수로 알려진 이존창(1801년 4월 10일 순교)외에 여러 명의 회장들과 교우들이 함께 처형되었고, 연령층으로 보아 최연소자로 순교한 사람은 김춘겸의 딸(1868년 4월 교수형)로 불과 10여 세였으며, 최연장자로 순교한 사람은 남상교(아우구스띠노, 성인 남종삼 요한의 부친, 1866년 1월 옥사)로서 84세 였다.

 그 밖에도 20세 미만 순교자들이 20명, 양반, 중인, 농민, 노비 등 각층의 순교자들이 있다.

 특히 어린이들과 부녀자들도 신앙 때문에 배교를 하지 않고 끝까지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는 것은 가정 신앙 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무령왕릉 가는 입구>


 

 <공산성>
 

<공주를 상징하는 웅진탑 모습>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금강교>

 

 

 

출처 : 카페 사랑의 향기마을

글쓴이 : 청산님

청산님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성지였는데...

출처 : 세포네
글쓴이 : 세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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