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9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도구 Ludovicus 2009. 1. 14. 09:2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히브리 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복음 마르 1,29-39

그 무렵 29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9시 뉴스를 보던 동생이 “헤드라인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앵커의 말을 듣고 오빠에게 묻습니다.

동생: 오빠 ‘헤드’가 뭐야?

오빠: 그런 말이지, 머리라는 뜻이야

동생: 그럼 ‘라인’은 뭐야?

오빠: 응, 그건 선이라는 뜻이야

그러자 동생이 고래를 갸웃거리며 다시 묻습니다.

동생: 오빠, 그럼 ‘헤드라인’은 뭐야?

오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으응, 그건 말이지 가르마야.”

머리에 있는 선을 생각해보니 정말로 가르마밖에 없네요. 그러나 헤드라인이 그런 뜻일까요? 아니지요. 부분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엉뚱한 말을 했던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이런 모습을 취할 때가 의외로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도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아는체 하는 모습들. 그래서 중요한 것을 행하지 못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들이 가장 중요한 것인양 생각하고 행동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대단한 분을 스승님으로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뿌듯함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기도하시지요. 그런데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바로 그들은 예수님께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는데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기도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돈이 좋고, 명예가 좋고, 다른 사람보다 윗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이 있는 그 자리를 벗어났던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에 맞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다른 일 다 하고서 시간 나면 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점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강조하여 말씀하신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선교. 이점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하는 오늘이 되십시오.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너무 참는 것은 겁쟁이다.(조지 잭슨)



서랍이 많은 사람(김미라, ‘나를 격려하는 하루’ 중에서)

재능이 많은 사람을 일본에서는 ‘서랍이 많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크고 작은 서랍들을 가진 4단 혹은 5단 서랍장처럼 크고 작은 재능이 담긴 서랍을 많이 가진 사람. 참 부러운 사람이지요.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심지어 성격까지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엇 하나 변변하게 해내는 것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은 참 불공평합니다.

이런 서랍을 원합니다. 어떤 흐느낌도 잠재울 수 있는 포근한 목소리 같은 서랍을 원합니다. 요리를 잘해서 배고픈 사람은 물론 마음이 헐벗은 사람들마저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서랍을 원합니다. 닫힌 마음도 거침없이 열 수 있는 따뜻한 손길 같은 서랍을 원합니다. 누군가의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을 그치게 할 수 있는 손수건 같은 서랍을 원합니다. 지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굳센 팔뚝 같은 서랍을 원합니다. 타인의 상처를 잘 꿰매 줄 수 있는 바늘 같은 서랍을 원합니다.

신이 주시지 않는다면 제 스스로 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겠습니다. 망치와 못으로 나무들을 이어 붙여서 아름다운 서랍을 만들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서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랍이 많은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재능이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진 서랍이 좀 더 많은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신이 준 열쇠를 부주의하게 잃어버려 더는 ‘신의 서랍’을 열 수 없게 될지라도 스스로 만든 서랍을 하나씩 늘려 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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