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2,22-35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드러날 것입니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 그 첫 자리는 ‘눈’(雪, snow)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눈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요? 다시 질문을 던지면 눈의 원료는 과연 무엇일까요? 높은 하늘에서 수증기가 얼어 땅에 떨어지는 것이니까 당연히 물이 눈의 원료라고 생각하시겠지요? 더군다나 눈을 녹으면 물이 되니까 당연히 눈의 원료는 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분이 계실까요?
그런데 10Cm의 눈을 녹이면 물은 1C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9Cm는 무엇일까요? 바로 공기입니다. 따라서 눈의 원료의 90%는 공기이고 나머지 10%만이 물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분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눈의 원료가 공기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눈을 통해 우리가 보고 있는 것도 이렇게 사실이 다를 수가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이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저 사람은 이런 저런 사람이야.’라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지만, 그렇게 규정한 것이 그 사람 전부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히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나아가 하느님에 대한 판단은 어떨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판단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판단합니다. 그래서 타협의 말을 종종 하지요.
‘주님, 제 소원만 들어주신다면 제가 열심히 성당 나가겠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계시기는 한 겁니까? 왜 저의 소원을 늘 무시하십니까? 주님, 당신의 사랑을 도저히 못 믿겠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에 대해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의롭고 독실한 믿음으로 인해서 그는 항상 성령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서, 그는 아주 연약한 갓난아이인 예수님을 보고서 곧바로 메시아이신 구세주를 제대로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하느님의 일을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시메온과 같은 의롭고 독실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섣부른 판단과 불안전한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진실을 우선할 것인지, 말것인지 여부에 따라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존 몰리)
손으로 물잡기(앤드류 마리아,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 중에서)
수도원장 히페리시우스가 자신의 성덕을 자랑하고 다니는 수도자를 불러들여 그에게 물었다.
"질리스 수사님, 당신이 자신의 성덕을 공동체에 자랑하고 다녔다는 것이 참말입니까?"
질리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공동체에만 자랑한 것이 아닙니다, 마을에 가서도 자랑한 걸요."
"당신은 당신의 성덕이 높다는 데 대해 정말 자신 있습니까?"
"물론 자신 있고 말고요."
질리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원장은 그를 데리고 수도원을 나섰다. 두 사람은 숲을 가로질러 강가에 도착했다. 원장이 질리스에게 두 손으로 물을 잡아보라고 지시했고, 질리스는 지시대로 따랐다. 몇 번을 되풀이하여 물을 잡아 보던 질리스 수사가 히페리시우스 원장을 향해 투덜거렸다.
"원장님, 손으로 물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손에 쥐었다 하면 그 순간 물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뭡니까?"
그러자 히페리시우스 원장은 질리스 수사를 타일렀다.
"아들이여, 성덕이란 바로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당신이 성덕을 손에 넣었다고 믿는 그 순간 성덕은 당신에게서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