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오늘의 말씀

[스크랩] 2008년 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도구 Ludovicus 2008. 9. 29. 06:50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8년 9월 29일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

제1독서 다니엘 7,9-10.13-14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복음 요한 1,47-51

그때에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며칠 전, 우리 성당 리모델링을 위해 공사를 하다가 성전에 무대 조명을 설치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 조명을 설치해 두면, 예술제나 음악회의 행사 때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무대 조명을 전문적으로 설치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원하는 바들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이것들을 다 충족시키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냐고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5천만 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가장 기본적으로만 무대 조명을 꾸미면 얼마나 들지를 물었지요. 그래도 3천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답니다.

그들이 제시한 가격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1~2백만 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지요. 만약 제가 3~5천만 원 정도 든다는 것을 알았다면, 조명 업자들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공사비용도 그리 넉넉하지 않으니까요.

문득 생각의 차이에 대래서 생각하게 됩니다. 모르기 때문에 그 생각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만약에 제가 이 조명 쪽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면, 조명업자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대해서 깜짝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예상 가격과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지요.

모르면 모를수록 생각의 차이는 더욱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즉, 주님을 모르면 모를수록 주님과 나의 간격은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점점 멀어지려고 하고 있는데, 당신 스스로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나타나엘은 충격을 받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다는 것은 나타나엘의 지난날을 상징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을 그래서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주시는 분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를 알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들의 불충으로 멀어진 간격을 다시 좁혀주십니다. 즉,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역시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서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줄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는’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합시다.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좋은 글‘ 중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참 좋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보다 가진 것이 좋아도
남에게 베풀 줄만 아는 바보같은 사람
항상 당하고 살면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이 부끄럽고 못나 보이지만
그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낍니다.

물론 그 반면에는
늘 실망감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사람
차라리 연락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인가 하고 말입니다.

남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봄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
남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출처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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